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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8

영화 <대니쉬걸> 이 영화는 눈이 즐거운 영화다. 배우도 화면도 아름답고 아름다우며 아름답기만 하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답니다~라며 흥미롭게 보여주기만 하지, 에이나르의 선택을 깊고 묵직하게 끌고나가지 못한다. 1. 평생 남자로 살던 에이나르가 여성 릴리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된 계기가 시기적으로 너무 늦는데다가, 너무 가볍기까지 하다. 다 자라 배우자와 결혼하고 즐거운 성생활도 하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우연히 여성의 옷을 걸쳐본 계기 하나로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뜨는 게 납득이 안 됐다. 어린시절 동성친구와의 묘한 관계도 복선으로 깔기엔 너무 약하다. 이 영화는 에이나르가 아니라 배우자의 성전환에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포용하기로 결정한 아내를 주인공으로 했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나는.. 2016. 4. 4.
영화 <보이후드 boyhood> 물처럼 흐르는 영속의 시간 속에서 아주 작은 찰나에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우리의 유년 더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사실적으로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고 싶다. 감독이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 12년 연출을 통해 살렸기 때문에 영화에 설득력이 깃들었다. 삶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잡아보려했지만 끝내 허무만이 남은 엄마의 시각에서 멈추지 않고, 항상 뭔가 힘빠진 상태로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다가 다시 조용히 흘려보내는 주인공의 관점을 통해, '시간은 그저 지나가고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는 단지 시간과 같이 흐르다가 가끔 어느 순간에 머물 뿐.' 라는 인생관을 감독은 전달하고 있다. 자칫하면 달관이나 초월을 가장한 인생무상으로 흐를 수도 있는 가치관임에도 영화.. 2015. 3. 7.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two days one night> 이해 관계의 충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주인공의 투쟁, 그리고 그 투쟁의 대단원인 마지막 1박 2일을 건조하고 간결하게 연출한 영화다. 여주인공인 마리옹 꼬디아르의 우울증과 여위고 피곤한 얼굴에서 지난 시간의 고난을 간접적으로 읽게함과 동시에 주변부 인물들의 반응과 대사를 통해 이 노동자들의 관계가 어떻게 분열되고, 변화했는지를 노골적이지 않게 보여준다. 이렇게 슬며시, 하지만 뭔 말인지 다 알아듣게끔 보여주는 연출이 참으로 세련되게 여겨져서, 다르덴이라는 감독 이름을 다시 한번 봐두었다. 영화에서 인상깊게 본 것은 주인공의 옷이다. 포스터만 처음 봤을 때는 '와 저 나시 진짜 예쁘다.' 생각하며 그냥 넘겼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너무나 우울 모드라 왜 저런 옷을 입혔나 궁금해.. 2015. 2. 17.
영화 족구왕 삼포세대 청춘을 위로하는 매우 유머러스하고 덜 꼰대스러운 영화다. 중간중간 너무 노골적인 비유, 대책없는 낙천만 빼면 아주 괜찮았다. 외제차 몰고 다니며 있는 척 하지만 실은 허름한 고시원해서 살고 있는 얼짱남 A 간지도 안 나고 쓸모도 없는 족구를 사수하려는 주인공에게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하라는 B 연애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으로 다시마만 먹고 살을 무지막지 뺀 주인공 절친 C 대학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비주류일게 분명한 뚱뚱보 여인 D 그러나 할 것 다 해내며 존재감을 뽐내는 D 패션쇼하러 학교 오는 것 같지만 은근히 양심있고 생각 있는, 공부해서 서울대 가는 게 꿈이라는 얼짱녀 E 제대하고도 해병대부심을 부리며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마초남 F그룹 공부와 미래에 방해되는 족구장 따위 다 없애버려야.. 2015. 1. 18.
영화 <인터스텔라> 상암 아이맥스에서 관람 1.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저 대사는 인터스텔라의 세계관을 압축하고 있는 것. 영화는 과학이 인간의 사고력을 어디까지 확장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힘에 대해 이러한 발상도 가능하구나 감탄이 나왔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이후로 길고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리스, 이집트 신화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유신이냐 무신이냐, 다신이냐 유일신이냐, 예수냐 알라냐를 가지고 설왕설래할 동안, 인류의 상상력이나 생각의 범주는 아주 조금만 확장되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약간의 변주만이 있었던 그런저런 주장들에 한 겹 더 씌운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던, 가장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매튜 맥커너히의 .. 2014. 12. 22.
영화 Groundhog day 어릴 때 한번 봤던, 로맨틱 영화라고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사랑의 블랙홀. 이 나이에 다시 보니, 아니네. 엄청난 상징과 메시지를 담은 영화였네 남녀사는 그냥 양념처럼 발라놨을 뿐 같은 날짜가 반복되는 영화 속 설정을 그대로 현실에 가져와도 무리없이 적용된다. 우리의 삶도 요일만 바뀔 뿐이지, 주인공처럼 매일매일 대동소이한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지는 거니까. 매일 반복되는 그라운드혹데이. 똑같은 패턴의 하루 안에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흥미로웠고, 탐식, 탐녀, 분노, 절망과 허무 끝에 선택한 변화된 삶의 방식과 그 결과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TODAY is TOMORROW 항상 똑같고 지루해보이는 시간을 내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아침 6시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시작이 될 수도, 어제.. 2014. 12. 5.
영화 <멋진 하루 (my dear enemy)>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영화 좋은 영화다. '멋진 하루'는 중간 중간 지루하지만 엔딩 때문에 모든 것을 상쇄하는 영화다. 엔딩이 원더풀 판타스틱하게 내 마음에 든다. 1. 설정이 좋다. 미운 인간과 하루 종일 반드시 같이 있을 일을 만들어야 하면서 동시에 그 미운 인간과 연루된 자신과 주변 군상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보여주고 싶은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면 어떤 설정을 가져와야 할까. 나는 돈 만큼 그 인간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건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돈이라는 것이 참신하면서도 이야기에 현실성과 설득력을 가져 온다. '알고 보니 내 친구의 새애인이 전남친' 식의 황당한 설정이 난무하는 한국 연애 영화에서 옛남자친구가 떼어 먹은 돈 찾으러 여자가 적극적으로 그 놈.. 2014. 7. 15.
영화 Miss.Violence (은밀한 가족) 1. 제목이 Mr. Violence가 아니라 Miss.Violence.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남자지 여자가 아닌데 왜? 가정의 지배자인 아버지는 대외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다. 늙었고 직업도 변변찮으며 오히려 상사에게 무시당하는 존재인데, 그런 그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정에서 휘두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권력은 또 다른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의 침묵과 무저항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빠로 비유되는 미친 권력자가 아니라, 엄마로 상징되는 미친 놈을 방관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Mr. 가 아니라 Miss를 고발하는 영화다. 어린 딸들의 무기력한 굴종은 동정받을 수 있지만, 딸들의 엄마인 그녀의 행동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 2014. 4. 23.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0. 하나의 추천으로 1월 초에 본 영화, 남편과 홍대 상상마당에서. 1.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를 하나 하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고 인상적이었다. 가족 영화로서 결론은 예상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서술이 정교하고 세련됐던 영화다. 십여년 전,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에서는 거의 다 큰 중학생 딸들을 교환해서 데려가는 설정이었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던 게 기억났다. 반면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개비와 까를로스는 아이들 나이가 아직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뒤바뀐 딸을 굳이 상대 가족과 맞바꾸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딸처럼 길러온 그 아이를 위해 친딸과의 연을 끊었다. 물론 한국에도 같은 영화.. 2014.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