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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y 기름코 2014. 3. 23.

 

 

0. 하나의 추천으로 1월 초에 본 영화, 남편과 홍대 상상마당에서.

 

 

1.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를 하나 하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었고 인상적이었다. 가족 영화로서 결론은 예상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 서술이 정교하고 세련됐던 영화다.

 

십여년 전, 한국 드라마 가을동화에서는 거의 다 큰 중학생 딸들을 교환해서 데려가는 설정이었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던 게 기억났다. 반면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개비와 까를로스는 아이들 나이가 아직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뒤바뀐 딸을 굳이 상대 가족과 맞바꾸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딸처럼 길러온 그 아이를 위해 친딸과의 연을 끊었다.

물론 한국에도 <가족의 탄생>같은 영화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그 나라의 문화적 통념을 보여준다는 가정 하에, 한국과 미국 드라마를 비교해보면 가족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고려할 때, 감독이 던진 질문이 서양이 아니라 혈연을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이루어졌다는 점, 또한 그와 같은 과정과 결말에서 무리없이 관객 모두에게 동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문화 진보로 여겨졌다.

 

2. 개인적으로는, 가족사를 나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새아버지의 입장에서도 바라보고, 반대로 어머니에겐 다시 분노하는 마음을 품었다가,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와 남편과 함께 만들어갈 가정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흔히 사람들은 아이가 없으면 그 부부는 여전히 남이고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혈연보다는 함께 한 역사와 시간의 농도가 가족의 본질이라는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했다면, 피 한방울 안 섞인 부부 역시 그런 관계일 수 있다는 것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지.

 

3. 주인공의 행보를 지켜볼 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본인이 아버지가 되어 간다는 것, 또 하나는 그럼으로써 어린 시절 본인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보며 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4. 배울 게 많았던 릴리 프랭키 부부 같은 양육자 모델. 부모가 된다면 저렇게 되고 싶다. 이상적인 부모가 완벽한 경제 상태, 사회적 지위, 학력 등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서울대 나온 부모들이 하는 흔한 착각 중 하나가 자신의 애는 우수할 것이라는 믿음이라는데, 우리 부부는 적어도 상대의 허접함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애가 책을 안 읽고 지적호기심이 없으면 나는 남편 탓을 하면 될 것이고, 애가 덤벙덤벙에 끈기가 없으면 남편은 나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다. 부부가 서로 너무 닭살스럽게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처럼 이렇게 터프하게 사랑하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언제 엄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몸은 부모의 몸을 빌어 나오더라도 그 안은 우리와는 또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릴리프랭키처럼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아빠, 릴리프랭키의 아내처럼 어른들의 상황에 영문도 모르고 휘둘리는 아이를 인간 대 인간으로 꼭 안아줄 수 있는 엄마, 그런 양육자가 되고 싶다.

 

5. 나는 이제 다 썼으니, 남편이랑 자전거 타러 나간다. 이런 휴일 너무 좋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