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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영화 <대니쉬걸>

by 기름코 2016. 4. 4.

 

 

이 영화는 눈이 즐거운 영화다.

배우도 화면도 아름답고 아름다우며 아름답기만 하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답니다~라며 흥미롭게 보여주기만 하지, 에이나르의 선택을 깊고 묵직하게 끌고나가지 못한다.   

 

1.

평생 남자로 살던 에이나르가 여성 릴리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된 계기가 시기적으로 너무 늦는데다가, 너무 가볍기까지 하다. 

다 자라 배우자와 결혼하고 즐거운 성생활도 하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우연히 여성의 옷을 걸쳐본 계기 하나로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뜨는 게 납득이 안 됐다. 어린시절 동성친구와의 묘한 관계도 복선으로 깔기엔 너무 약하다.

이 영화는 에이나르가 아니라 배우자의 성전환에 혼란스러워하다가 결국 포용하기로 결정한 아내를 주인공으로 했다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나는 주인공 에이나르의 성전환으로 자아 찾기에는 전혀 감정이입을 못해서 그의 아내 게르다의 마음에 집중해서 보게 됐다.

 

성전환은 하나의 소스일 뿐 그건 다양하게 여러 형식으로 변주될 수 있는 거니까, 다양한 상황을 대입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남편이 자신이 살고싶은 삶이 무엇인지 이제야 찾았노라며

함께 계획했던 인생과 전혀 다른 길을 가겠다고 주장한다면 난 어떻게 할 것인가.

나와 함께 하기로 한 인생을 버리고,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어 갑자기 싯타르타처럼 가정을 떠나 부처가 되겠다든가, 앞으로 평생 위아래 모두 빨간 옷만 입고다니겠다 해도 나는 게르다처럼 남편을 지지해줄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사랑이 얼마나 '조건적인 사랑'인지 새삼 깨달았다. 예를 들어 나는 남편이 5미터의 키였으면 사랑하지 않았을 것 같다.

 

 

2.

목숨을 걸고 성별을 바꾸는 에이나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자, 여자라는 젠더를 떠나 나 자신 자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누군가는 남자 혹은 여자가 되는 것에 목숨을 걸까? 왜 여성 트랜스젠더는 꼭 사회적으로 규정된 가장 여성스러운 차림을 하고 여성스럽다고 규정된 말투를 쓸까?

여성의 몸, 여성이 입어야 한다고 규정된 복식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일까?

난 동성애는 사랑하는 대상의 다양성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트랜스젠더는 내여성이라는 특정 성에 구애받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치마를 입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고 이런 것들은 다 후천적으로 학습된 문화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했지 목숨을 걸만한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트랜스젠더는 이런 내 생각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도대체 '성별'이 뭐길래?"

영화 대니쉬걸은 내게 이 의문 하나를 남기고 아무 대답없이 let it fly 라는 멋 가득한 대사만 남기고는 느닷없이 끝났다.

 

에이나르같지 않은, 통념과 다른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다큐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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