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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영화 <인터스텔라>

by 기름코 2014. 12. 22.

 

 

 

상암 아이맥스에서 관람

 

1.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저 대사는 인터스텔라의 세계관을 압축하고 있는 것.

영화는 과학이 인간의 사고력을 어디까지 확장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힘에 대해 이러한 발상도 가능하구나 감탄이 나왔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이후로 길고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리스, 이집트 신화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유신이냐 무신이냐, 다신이냐 유일신이냐, 예수냐 알라냐를 가지고 설왕설래할 동안, 인류의 상상력이나 생각의 범주는 아주 조금만 확장되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 약간의 변주만이 있었던 그런저런 주장들에 한 겹 더 씌운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던, 가장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매튜 맥커너히의 핵심 대사였던 "그들이 우리야."

 

신적인, 그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다른 시간 체계에 존재하는 또다른 우리였다니.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놀랍다.

 

여타 SF같이 신은 없다는 냉소에서 출발하여 외계 생명체 이야기로 버무리는 게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신적-초월적 일들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는 인정에서 시작하여

그러한 현상을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따뜻한 온기가 있는 상상력을 도구로 하여 결국엔 그들이 우리라는 명확한 결론으로 맺음하다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SF 스토리계의 진보이며, 십대라면 종교관이 재정립될만한 파급력을 지닌 설득력 있는 이야기.

 

2.

 

"당신 허리사이즈는 32? 길이는 33? 당신이 엉덩이에 뭘 걸칠지 선택할 때조차 그렇게 많은 숫자를 고려하면서, 내 아들의 미래는 이 성적 하나로 결정지으려고?"

 

나에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대사.

 

뭔가를 결정할 때 옷 사는 것만큼도 까다롭게 따져보지 않았던 나의 지난 나날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나 대신 매튜가 따져묻는 것 같았다.  

 

 

3.

 

인간은 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or 살아 남고 싶어! 하는 것일까?

 

4.

 

주인공들을 포함 여러 캐릭터들이 내리는 인생 결정들을 보면서 남의 사고를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라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내 앞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독의 시간이 남아있을 때

맷처럼 영원히 안 올 수도 있는 희망을 기다리며 수면 캡슐에 들어가 시간을 정지시킬지,

아니면 흑인 연구원처럼 시간이 흘러가게 두고 혼자서라도 생을 이어갈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답을 못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