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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만화 <진격의 거인>- 성적이 우수한 자가 가장 안전한 곳으로

by 기름코 2014. 12. 24.

자꾸만 거인이 나오는 악몽을 꾸게 되어 더이상 보진 않지만, 1년 전에 진격의 거인에서 너무나 인상깊게 보았던 장면이 있어서 기록해둔다.

 

진격의 거인 초반부를 보면 주인공이 군사 학교에서 훈련받는 과정이 나온다.

어린 학생들이 군사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고 열심히 실력을 키우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그 이유는 성벽 안 깊숙이 왕이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로 배치받아 거인들과 싸우지 않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다. 소수만 갈 수 있는 잘 먹고 편히 살 수 있는 그 곳에 가기 위해 학생들은 피터지게 싸운다.

 

성벽 안의 공동체가 거인들로부터 보호되려면, 즉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를 위해서는 군사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인재들이 전선의 헤드에 배치되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 싸우는 이들이 가장 싸울 필요가 없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는 이러한 사실을 이용하여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긴다. 그런 곳에 가고 싶으면 1등을 하라고 말이다. 싸우지 않기 위해 싸우는 공부를 하다니, 실소가 터졌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서로서로 경쟁하면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자원 분배가 이루어져 사회는 발전할 것이라는 자본주의의 환상이 무참히 깨지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계속 저렇게 인재라는 자원이 배분되면 변방은 아주 소수의 소신 지원자들로 인해 간신히 지켜지다가 종국에 그 사회는 거인한테 짓밟히지 않을까.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임용고사 수석은 강남의 일급진 학교로만  배치되고 성적이 하단부에 있는 교사는 낙후 지역으로 가는 걸 보면서, 진격의 거인이 생각났다.

 

공교육 의존도가 높고 학교의 부활이 절실한 지역에는 성적이 낮은 교사를 보내고, 교육 자원이 차고 넘치는 강남 지역엔 수석 교사를 배치해주고 경력으로  검증받은 교사들을 보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심지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열외 지역에 더 많은 우수 교사를 지원해줘야 이 나라의 교육이 발전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체제 내에서는 자유 경쟁 하에 더 많은 노력 혹은 더 좋은 머리를 가지고 더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 더 달콤한 보상을 주는 게 절대 법칙. 나도 그런 논리에 세뇌당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1등을 해서 더 안전한 곳, 더 편한 곳, 더 보장된 곳으로 가고 싶어 노력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그런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너에게 모든 선택권을 주고 밑으로 차례차례 내려가며 선택권이 차등분배되는 시스템이 정말 합리적인 일인지, 그것밖에 길이 없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진격의 거인의 그 장면은 경쟁에 의한 합리적 분배 논리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것인지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러니를 뛰어넘을 수 있는 명확한 대안은 내게 아직 없지만, 적어도 공공 부문에 있어서는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단 확신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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