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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영화 <보이후드 boyhood>

by 기름코 2015. 3. 7.

 

 

물처럼 흐르는 영속의 시간 속에서 아주 작은 찰나에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우리의 유년 더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사실적으로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고 싶다. 감독이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고 12년 연출을 통해 살렸기 때문에 영화에 설득력이 깃들었다.

 

삶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고 무언가를 계속 잡아보려했지만 끝내 허무만이 남은 엄마의 시각에서 멈추지 않고,

항상 뭔가 힘빠진 상태로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였다가 다시 조용히 흘려보내는 주인공의 관점을 통해, 

'시간은 그저 지나가고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는 단지 시간과 같이 흐르다가 가끔 어느 순간에 머물 뿐.' 라는 인생관을 감독은 전달하고 있다. 자칫하면 달관이나 초월을 가장한 인생무상으로 흐를 수도 있는 가치관임에도 영화는 신기하게 냉소적이지 않다.

 

감독의 페르소나나 마찬가지인 소년이 감독 자신처럼 카메라를 쥐고,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변화하게 될 짧은 순간을 의미있는 순간으로 잡아낸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소년은 그것을 덧없다 여기지 않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사진으로 진로를 결정한 거겠지. 항상 그는 마음 속에 카메라를 찰칵찰칵 켜두고 인생을 따뜻한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의 작은 삶에서도 그렇게나 많은 기록할만한 순간들이 있었다. 영화가 별 것 없는 내용으로 별 것 없는 인생을 그리고 있어 뭔가 힘빠지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을 하나하나 안아준다는 느낌을 받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무심코 흘려들을 수도 있는 단 한마디 말을  의미있는 것으로 포착하여 인생의 기틀로 삼았던 외국인 노동자, 평생 히피처럼 살 것 같았지만 뒤늦게 만난 인연으로 인해 결국엔 다시 부양하는 생을 살게 된 아빠 등의 다양한 인물도 감독이 괜히 끼워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변화가 아주 작은 순간 하나, 인연 하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재미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이 이런 작은 우연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 영화를 본 모든 관객은 소년의 인생을 따라가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했을 거다. 무려 영화 주인공의 인생이 저렇게 놀랍도록 지루하고 때론 시시한 것을 보면서,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한편으론 안도했다. 나의 생, 그리고 타인의 생을 한 뼘 더 크게 포용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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