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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영화 <멋진 하루 (my dear enemy)>

by 기름코 2014. 7. 15.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영화 좋은 영화다.

'멋진 하루'는 중간 중간 지루하지만 엔딩 때문에 모든 것을 상쇄하는 영화다.

엔딩이 원더풀 판타스틱하게 내 마음에 든다.

 

 

1.

설정이 좋다.

미운 인간과 하루 종일 반드시 같이 있을 일을 만들어야 하면서 동시에 그 미운 인간과 연루된 자신과 주변 군상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보여주고 싶은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면 어떤 설정을 가져와야 할까.

 

나는 돈 만큼 그 인간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건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게 되는 계기가 돈이라는 것이 참신하면서도 이야기에 현실성과 설득력을 가져 온다. '알고 보니 내 친구의 새애인이 전남친' 식의 황당한 설정이 난무하는 한국 연애 영화에서 옛남자친구가 떼어 먹은 돈 찾으러 여자가 적극적으로 그 놈 만나러 간다는 게 신선하지 않은가. 액수도 현실적이다. 그냥 잃어버린 셈치기엔 애매한 액수인 350만원.  

 

350이 아쉬워서 원수같은 인간한테 굳이 받으러가는 30대 중반의 상황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듯이 현재 희수는 궁색하다. 옛 애인 앞에서 뭐 하나 보란 듯이 내보일 것이 없다. 가장하는 데에 서툰 직선적인 희수는 자신의 불행을 그대로 얼굴에 투영한다. 시종일관 날이 서있고, 꼬인 과거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병운이란 인간에게 예의상 미소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돈에 관해 개념이 흐릿한 인간 병운은 자존심은 집 밖으로 나올 때 냉장고에 넣고 나오는지, 여러모로 희수와는 대척점에 선 인간이다. 350만원도 바로 못갚는 30대 중반 무직 이혼남은 하루 종일 능글맞게 싱글벙글이다.

 

이처럼 설정 하나만으로도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해서 '오오 괜찮은데?' 하면서 보기 시작했다.

 

 

2.

병운이란 인물을 보여주는 데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영화지만 이 영화는 결코 병운이란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철저히 희수의 시각으로 해석되는 이야기고, 병운에 대한 희수의 관점을 따라가며 그녀의 내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멋진 하루라는 제목과는 정반대로 돈을 갚기 위해 여기저기 돈 꾸러 전전하는 병운을 따라다녀야만 하는 희수의 하루는 모욕의 하루다. 현대판 운수 좋은 날로서, 역설의 끝판왕이다. 병운 때문에 그녀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한번은 불쌍한 사람이 되었다가 어떨 때는 찌질하고 구차한 옛여친 취급을 받는다. 처음엔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던 희수지만 모욕의 횟수가 거듭되면서 면역이 생기고 동시에 병운의 희극적이면서도 고달픈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말투는 조금씩 누그러지고 오히려 나중엔 넌 왜 참고만 있냐고 병운의 역성까지 든다.

 

나의 사견에 불과하지만, 영화에서 담당하는 병운의 역할은 단지 옛애인이 아니라 후회되는 과거의 총체라고 생각한다. 희수 자신의 후회되는 과오들을 다 뒤집어쓰고 있는 게 병운이다. 희수는 오랜 시간 곱씹으며 미워했을 것이다. 과거의 병운을 그리고 현재의 자신을.

 

그런 병운에게 점점 연민의 감정을 품게 되고 그 찌질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희수의 변화는 병운과 다시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과거와의 참된 이별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쉬움인지 연민인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 때문에 병운을 다시 차에 태우려다가

넉살 좋게 길거리 시음대에서 와인을 마시며 껄껄대는 병운의 모습을 보고

다시 운전 방향을 고쳐잡고 차 뒤편으로 물 흐르듯 병운을 흘려보내면서

앞으로 운전해나아갈 때 슬며시 희수의 입가에 처음으로 올라왔던 그 미소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할 이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지 못했던 과거와 적극적으로 조우하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후회와 미움의 중압감에서 빠져나와

종국엔 웃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my enemy가 my dear enemy로 바뀌는

멋진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