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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이면서개인적이지않은133

살아있는 문장들 *공동육아 어린이집 소식지에 쓴 신세한탄 글이다. 나의 삼십대의 한 기록으로서 여기에도 남겨둔다. 회사 다니며 애 키우느라 삶이 너무 찌들어서 특별한 글감이 없다. 건빵이랑은 주말 부부 되며 얼굴 보기 어려워졌는데도 다툼의 빈도는 줄지 않았고, 해찬군에게는 화를 유독 많이 냈던 한해였다. 그렇다고 내가 올해 뭐 신나는 여행을 갔어, 신간을 냈어, 뭘 했어. 확 다 때려쳐버려? 이런 생각이나 했지, 새롭게 한 거라고는 공동육아밖에 없다. 그런데 공동육아 체험 후기는 이미 여기저기 너무 많이 떠들고 다녀서, 소식지를 통해 또 하기에는 화자인 나 자신의 피로도가 크다. 이번 소식지에는 그냥 나 힘들었던 이야기를 담담히 쓰고자 한다. 요새 정말 이렇게 계속 살다간 이름도 모르는 조상님 얼굴 뵐 것 같다. 어린이.. 2020. 3. 12.
꼴등이 아니라 2등이야 엊그제 해찬이랑 저녁 먹다가 나온 대화 기록 = 해찬아, 엄마는 벌써 밥 다 먹었다. 엄마는 1등이다, 해찬이는 그렇게 먹으면 꼴등하겠다. + 나는 2등이야. 2등으로 먹는 거지, 꼴등이 아니야. 엄마는 1등으로 먹었고 나는 2등으로 먹은 거지. 41개월 우리 아들에게 한방 먹었다. 서둘러 행동하게 하려고 비교해서 등수 매기는 거 앞으로 절대 안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훈육 방법이랍시고 누가 누가 더 잘하나 자꾸 경쟁 부추기는 게 어른들의 특기인데, 우리 아들한테는 안 통한다. 이것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힘인가 싶다. 2019. 11. 12.
보름달 해찬이가 너무 놀아 피곤했나보다. 전주에서 대전 오는 길에 차에 타자마자 잠들더니, 눕혀도 안 일어났다. 결국 저녁도 못 먹고, 다음날 아침에 깨었다. 그 틈을 타 나는 걸으러 공원에 가고, 남편은 대전 사는 친구를 만나러 밤외출을 나갔지. 살짝 땀이 나게 걸은 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하늘을 보는데 세상에나!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보름달이 떠 있는 게 아닌가. 달이 참 풍성하고 듬직하여 보자마자 우리 아들 닮아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요리조리 찍어보아도 동그랗고 잘생긴 달을 사진에 담을 수 없어 포기했다. 지금 우리 아들이 쿨쿨 자고 있어서 너 닮은 이 예쁜 달을 못보여줌이 어찌나 아쉽던지. 그렇게 달을 한참 보다가 집에 왔는데, 우리 엄마가 베란다에 쪽의자를 갖다 놓고 거기에 앉아 하늘만 쳐다보.. 2019. 9. 14.
인간을 인간답게 해찬이가 오늘 아침에 외할미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으며 "할머니, 밥이 너무 맛있어서 고마워요." 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이 네가지 문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들이 점점 인간이 되어 간다. 신기하고, 고맙다. 2019. 8. 16.
천국 아들과 남편이 드디어 완전히 잠들었다. 혼자 슬며시 나와 라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아까 읽다만 소설 '훔쳐보는 여자'를 마저 읽는다. 카드 뉴스 광고 보고 뒷 얘기가 넘 궁금해서, 오늘 교보로 달려가 바로 사온 바로 그 소설. 초반부가 넘 잼나서 바로 빠져들었다. 빨리 소설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아들이 잠들기만을 계속 기다렸다. 책 보면서 후식으로 탄산수 한 사발 들이키고, 제주도에서 사온 카카오패밀리 카라멜을 천천히 녹여 먹고, 복숭아도 하나 깎아 묵꼬. 살? 아 몰랑. ㅋㅋ 절전을 위해 안방 에어컨만 돌려서 거실은 방콕의 밤처럼 덥고, 책 읽으면서 중간중간 빨래하고 건조기 돌리기에 반쪽짜리 휴식. 하지만 모두가 잠든 조용한 주말 밤은 정말 천국이다 천국. 꿀 같은 혼자만의 시간은 내 삶이 처한 현.. 2019. 8. 4.
상상과 현실 모오닝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차키를 들고 우아하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내 차에 시동을 걸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도심을 가로질러 출근하는 먼훗날의 나를 상상해본 적 있다. '나' 앞에 근사한 수식어가 만연체로 주렁주렁 달릴 것이란 허영심으로 가득찼던 이십대 초반에. 현실은 웬 걸. 매일 아침 혼이 빠져 나간다. 일어나면 애 먹이고, 입히고, 책 읽어주고, 지하주차장으로 자꾸만 혼자 뛰어가려는 4세 아동을 불러 세워 손 단단히 잡고, 15.5kg 을 번쩍 들어 카시트에 앉힌 다음, 팔 빼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과자를 손에 쥐어준다. 운전하면서 라디오 좀 들을라 했더니 " 내 노래 틀어 내 노래." 아들의 채근에 동요로 급바꿈. 사무실에 도착해 가방을 열고 립스틱을 꺼내려는데, 해찬이가 어제 .. 2019. 6. 3.
기쁘고 슬픈 내 삼십대 아이의 모든 모습을 음미하고, 기록해두고 싶다는 소망과 정반대로 살고 있는 요즘이다. 가장 중요한 일에 쏟아야할 정신과 마음이 일상의 사소한 것들 때문에 그리고 나의 게으름 때문에 자꾸 흐트러진다. 해찬이는 요새 무지무지 말을 안듣는다. 그런데 또 무지무지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벅차게 감동스럽다가도, 가는 세월이 야속해 슬퍼진다. 일 때문에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를 일주일이나 못본단 생각에 갑자기 숨쉬는 게 어려워지고, 눈물이 났다. 만으로 서른다섯 해를 살아온 나는 해찬이 말고도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많지만, 해찬이의 단조로운 세상에서는 오직 나 하나가 전부였을 것이다. 그 작은 세상이 그 큰 상실을 견디고 또 견뎌, 마침내 울지 않게 되었을 때 그것은 성장일까 체념일까. 나.. 2019. 5. 5.
울면서 헤어진 날 엄마 가지마 가지마 내게 매달려 오열하던 해찬이를, 어린이집 선생님이 데리고 들어갔다. 이럴 때의 기분은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다. 4월은 해외 출장이 두 번이나 있어, 해찬이가 엄마 없이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번 주 러시아 출장을 마치자마자 어린이집 모꼬지 행사로 1박 2일간 또 무리한 나는 심각하게 피곤하다. 오늘 휴가를 낼까 하다가 눈치보여 내지 않았는데, 그냥 아이랑 같이 있어줄 걸 그랬다. 아이가 아직 콧물도 흘려, 병원도 가야하는데. 피곤한 와중에 우울하기까지 하다. 2019. 4. 29.
처음으로 자동차를 몰고 극장에 다녀오다 영화 그린북을 보러 집에서 메세나폴리스까지 혼자 자동차로 왕복했다. 주행도 완벽했고 주차도 완벽! 남편이 위험하니까 차 가져가지 말라고 난리쳤지만, 믓찌게 운전 완료! 동승자 없이 혼자 차 몰고 마트 이상의 거리를 다녀온 것은 처음이라 초흥분 상태다. ㅎㅎ 믓찌다, 나 자신! 용기 내길 잘했어!! 2019.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