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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휴게소

소설 복선은 결말을 암시하지만, 인생은 소설과 다르다!

by 기름코 2010. 12. 7.
요즘 내 정신상태가 영 메롱했는데 일이 드디어 터졌다.

거두절미하게 얘기해서, 비행기를 놓쳤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비행기를 놓쳐본 사람만이 알지.
덧붙여, 심하게 창피하기도 했다. 내가 일흔살 먹은 어르신도 아니고 멀쩡한 이십대 젊은이인데, 비행기 탈 때는 일찍 가야한다는 것도 몰라서 늦게 도착해서는 중국동방항공과 중국국제항공을 헷갈려하며 창구도 간신히 찾아가고, 심지어는 비행기를 놓치기까지 하다니! 오늘 내 차림새도 완전 루저의 복장이었는데, 예쁘고 늘씬한 여자승무원 앞에서 심하게 모자란 모습이나 보이며, 해결책이나 강구하다니! 기분 쉣이었다.

공항구석의자에 내 육신을 살짝 걸쳐놓고, 잠시 멍을 때렸다. 멍을 때리고 나자 곧바로 찾아온 것은 극심한 자괴감. 내가 너무 바보같고 화려한 공항이란 공간에서 나 혼자 병신짓 하는 사람같아서 급 처량모드로 엉엉 울고 싶었다. 허나 나는 이제 애도 아니고 어른이니까, 극도의 절제심을 발휘하여 참았다.
전화가 참 심하게 연결이 안되는 인터파크 투어에 근 오십분만에 통화 성공하여, 참으로 천우신조 곱하기 백으로9일 오전 티켓을 얻었다. 원래는 없었는데, 내가 전화 건 그 시간에 딱 한자리 생겼다 했다. 바로 이틀 뒤에 자리가 있단 얘길 들으니까,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5만원 패널티 요금과 1만 8천원 인천공항리무진 버스비가 허공에 날아갔지만, 이 상황에선 불평할 처지가 못 된다. ㄱ ㅇ 이 말대로 비행기 놓친 것 치고는 선방이다.

바뀐 항공권은 오히려 오늘 항공권보다 더 좋다. 오늘 항공권은 북경에서 경유시간이 5시간이 넘고 밤 12시에 도착하는데 이 항공권은 오후 6시 도착이다. 방콕 숙소에 아마 7시 조금 넘어서 도착할 것이고, 여유있게 방콕의 밤을 즐기고 푹 자면, 오늘 이 기분도 조금은 옅어지겠지.

여행준비 부족하니 더 하고 가란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오늘 내일을 감사히 여기며, 준비에 힘써야겠다.
오늘 밤 12시에 방콕공항에서 노숙하다 소매치기에게 털렸을지도 몰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신대방 트래블 메이트에 가서 복대랑 뭐 이것저것 주섬주섬 담아와야겠다. 복대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오늘 일을 겪자, 내 정신상태는 호랑이가 물지 않고 어흥만 해도 지 혼자 자빠져서 죽을 상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겸손한 마음으로 땀에 젖은 복대를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여야겠다. 

오늘은 급한 마음에 방도 딱 오늘 꼴로 해놓고 나왔는데, 청소도 싹 해놓고 가야지.

정신수습 거의 다 했는데도, 눈물은 난다. 몽쉘통통 2개를 까먹도록 나 자신에게 허했다.
다 까먹었는데도 눈물이 질질 난다. 달달한 모카프레소도 입으로 꾸역꾸역 넣어주는데도, 눈은 계속 촉촉하다.

뇌에 막이 낀 것 같고, 두 눈의 뻐근함은 가시질 않고, 갑자기 여행가는게 무섭기만 하다.
하지만 쉣인 정신상태를 고치기 위해서 여행가는 거였으니까, 이왕 가게 된 거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려야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