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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휴게소

소비가 아닌 '투자'라고 생각해야 속이 안 쓰린 여행준비

by 기름코 2010. 12. 3.
1. 여행 배낭

인터넷 정보를 간추리니, 한 달 정도 여행엔 오십리터 정도는 들어줘야 한단다. 숫자바보인 나는 직접 봐야 감이 잡히겠기에 고속터미널 신세계 백화점으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갔다. 인터넷평으론 오십리터는 여자한테 너무 크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까 내 키에 오십리터는 큰 무리가 아니더라. 자전거 살 때도 그렇고 배낭 살 때도 그렇고 키가 큰 편인 게 쏠쏠한 장점이 되는 듯. <컬럼비아>가 그나마 오십리터 이상급도 여성스러운 디자인이 있길래 이리 메어보고 저리 메어보는데, 그 집 총각직원이 슬쩍 귀띔을 한다.

"사실 진짜 A급 배낭은 저 앞집의 그레고립니다. 가격은 두 밴데 값을 해요. 저도 하나 있는데, 기왕 사실 거 거기도 한번 보고 오세요."

그레고리??? 첨 들어봤는데?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니 3대 A급 브랜드란다. 그레고리, 오스프리, 도이터를 알아준다고 한다. 백화점엔 그레고리만 있어서 그것만 착용해봤는데, 가볍고 좋긴 좋았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격인데, 무려 42만원이다. 비행기값이랑 똑같아서 패스.

남대문이 수입배낭이 좀 더 싸다는 정보가 있어서, 다음 날 남대문에 갔는데, 의외로 가방가게가 없었다. 가방 가게는 거의 명품 짝퉁이나 팔고 배낭집들은 시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용품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큰 아웃도어 가게가 있길래 들어갔더니, 그레고리는 없고 도이터, 오스프리 등만 있어서 그들 브랜드의 오십리터들만 착용해 봤다. <도이터>가 비교적 더 저렴해서 우선 브랜드는 그걸로 낙점. 오십리터짜리 여성미 돋는 빨간 색이 있어 눈이 갔는데, 비싼 가방은 나만 쓰는 게 아니라 결혼 후엔 온 식구가 돌려 쓸 것 같아서 패스. 좀 더 업그레이드된 다른 모델 중에서 중성적이면서도 밝은 색상인 오렌지로 최종 결정했다. 허리 벨트가 매우 두껍고 튼튼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바로 요거! 도이터 2010년 뉴모델이다.


남대문에서 현금가로 뒤에 붙는 꼬리 없이 깔끔하게 깎아서 16만원 주고 구입했다. 블로그와 중고시장 뒤져보니까, 중고도 17만원이고 gs구입가는 이것 저것 할인받아서 18만원이라고 하는데, 그와 비교하면 나는 싸게 산 편인 것 같다. (참고로 컬럼비아에서 본 배낭들은 20만원 초반대였다. 디자인을 포기한다면 아울렛에서 옛시즌 배낭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단 내게 맞는 용량의 배낭의 재고가 풍부한지는 의문.)  

배낭을 사니까 이제 진짜 여행기분 난다. 


2. 여권

중학교 때 미국 다녀올 때 처음 발권하고, 2004년 유럽여행까지 써먹은 여권은 이미 증조고조할머니 여권이라 아예 새로 받아야 할 상황. 십년 짜리는 오만오천원이라길래 그 돈 내고 여권사진 (1만 2천원) 찍어서 관악구청에서 발급받았다. 걸리는 시간은 약 5일 정도. 사진은 참 동남아스럽게 나왔다. 단골인 관악구청 옆 포토픽스에서 찍었는데 언제나 조증이신 것 같은 주인아저씨는 얼굴이 지난 번보다 좋아졌다면서 설레발을 치셨다. 서비스로 액자에 넣으라며 크게 두장 뽑아주셨는데, 내 눈엔 거지라서 차라리 돈으로 주지 라는 마음 뿐. 사진으로 내 얼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라오스에서 암만 해도 사람들이 현지어로 말 걸 것 같다. 그러면 시크하게 "사바이디~!" 해줘야지.

십년짜리 받은 김에 38살까지, 신혼 여행까지 포함해서 여행 많이 다녀야겠다. 희망사항은 이뤄질까?  


3. 여행 정보  

론니플래닛을 우리카트 포인트로 할인받아 약 7천원에 구입했고, EBS에서 나온 <라오스>를 반값 할인으로 7400원에 샀으니까, 약 1만 4천원 든 셈. 그 외 참고책들은 서점에서 찾아 노트에 옮겨 적었으니 그 외 비용은 안 들었다. 

여행지가 동남아가 된 이유를 잠깐 설명하자면,  

최근 우울했던 어느 날, 포도몰 반디앤루니스에 갔다가 반값 할인도서 코너에서 <라오스>가 있길래 집어 들었는데, 그게 딱 내 여행지가 되고야 말았다. 나는 참 인생의 많은 부분을 계획보다는 우연성에 기댄다.


4. 왕복항공권

표 값은 총 42만 8천원. 여기에 공항 이용하면서 또, 북경에서 잠깐 나왔다 들어가면서 몇 만원 추가되겠지.
 

5. 캄보디아 비자

인터넷 정보로 국경에서 20불 + 뇌물 1불이 든다니 약 21불 들 예정.


여기까지가 아주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준비.

그 외, 다양하고 자잘하게 들어갈 돈이 교통비까지 포함해서 오만원 조금 넘을 것 같다. 
약, 렌즈액, 스포츠타월, 바디선크림, 비닐지퍼백, 파우치, 손전등, 등등 잡다한 게 꽤 많다. 
ㄱㅇ이가 있었으면 이것 저것 빌리기도 하면서 준비했을 텐데 아쉽다. 빈자리가 크다. 
비키니도 빌려갈 수 있었는데...혹은 골라달라거나. 비키니는 결국 못 고르겠어서 못 샀다.
오빠는 안 가져간다고 좋아했지만, 내가 안 입을 것 같아요?  현지에서 꼭 사고 말겠습니다.  

환전도 했다. 캄보디아는 달러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이 다 되고, 라오스의 경우도 낍보다는 바트나 달러를 선호한길래 우선 30만원은 달러로 환전, 40만원은 씨티은행해외현금카드에 넣어두고, 바트는 7만 7천원 들여서 현찰로 2만바트 정도 준비했다. 엄마가 예전에 만들어주신 카드 하나, 오빠가 필요하면 쓰라고 준 카드 하나 해서 신용카드는 총 2개 준비. 달러는 씨티은행에서 70% 할인쿠폰써서 했고, 바트는 우리은행에서 실적 덕분에 50% 할인받고 환전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바트는 환전할인쿠폰 같은 거 없다고 한다. 

환전하러 갈 때 자전거로 왔다갔다 했는데, 콧물이 줄줄줄 났다. 겨울이 온 것이다! 나는 동남아로 도망가니까 괜찮단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대한민국 올해 12월은 눈물 나게 추웠으면 좋겠단 못된 생각도 조금 했다. 코 풀면서 또 ㄱ ㅇ 이 얼굴이 떠올랐다. 코 풀기의 제왕인 상호생각도 났다. 다들 타국에 있구나. 너희 둘은 이로써 확보된 공통점이 두 개.  

항공권 덕에 워커힐 면세점 1만원 할인 쿠폰이 생겼는데, 왜 하필 워커힐인지 귀찮아 죽겠다. 면세점이면서 왜 혼자 강변역 쪽에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롯데,신라, 동화는 중구쪽에 다 몰려있어서 좋은데 왜 하필 쓰라고 준 쿠폰이 워커힐인지. 아깝다. 

여행자보험은 들지 않을 생각이다. 위험한 투어할 때는 여행사 통해서 할 것이고, 이동시엔 절대로 스쿠터를 쓰지 않고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들지 않기로 했다. 분실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여행자 보험으로 분실 보험 제대로 받았던 얘기도 들어보진 못했으니, 그냥 철저하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련다.

성수기에 가기 때문에 숙소가 매우 신경 쓰이는데, 여기서 미리 예약을 하고 가기엔 여행 일정이 불확실해서 고민이다. 일단 메일은 보내둘 생각. 벼락치기긴 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 여행은 준비부터 사람을 능동적이고 활동적이게 만들어서 좋다. 내가 거의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꾸릴 수 있기에, 삶의 권태기에 사람들이 여행을 택하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