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개인적이면서개인적이지않은

생일 전 날

by 기름코 2022. 9. 8.

9월 9일이 생일인데 추석 귀향길 차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건 억울해 + 해찬이 비염 심해져서 병원에서 약 받아야 돼 + 밀린 접종도 해야 돼 + 상경 후 기분이 좋으려면 집이 깨끗해야 되니까 청소 필요

이러한 생각이 겹치고 겹쳐 오늘 오후 반차를 냈다. 살이 익을 것 같은 가을 햇살을 기분 좋게 맞으며 자전거를 씽씽 돌려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연휴 동안 볼 해찬이 책(마법천자문에 빠져있음), 내가 볼 만화책 빌리고(집  근처 도서관은 만화책도 있다) 책도 읽었다. 평일 낮의 도서관은 쾌적 그 잡채.  

정신 없이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덧 5시. 다시 자전거를 달리고 달려 어린이집으로 갔다. 5시가 넘어도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건 공동육아 어린이집밖에 없을 것이다. 연장반 모둠 준비를 하고 있던 해찬이는 친구들과 안녕, 안녕 큰소리로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서로 잘 가 하며 어찌나 애틋하게 인사를 나누는지, 지켜보는 내 마음이 다 뭉클.  시연이, 규형이는 나에게 눈을 찡긋하며 손 하트를 날린다. 자기 친구 엄마한테 이렇게 친근감 있게 애살을 떠는 풍경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아과 대기실에서 해찬이는 "병원 끝나면 어디로 가? " 라고 물었다. 내가 집으로 간다니까 "에이 나는 다시 어린이집 가고 싶은데..." 한다. 정말 이런 것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니까 가능한 대화가 아닐지. 세상에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서 놀고 싶다는 게 어딨어 진짜. 이 엄마가 비염약 타러 반차까지 냈는데에.

이사 오고 나서 단골이 된 소아과 앞에는 엄청 친절한 약사가 운영하는 약국이 있다. 약사 선생님이 해찬이에게 머리 스타일(집에서 솜씨 없이 앞머리만 짧게 자름)을 보고 귀엽다고 칭찬해주시자 해찬이는  몸을 베베 꼬며 고개를 돌린다. 하하핫

집에 와서 해찬이랑 나는 각자 읽고 싶은 책 삼매경에 빠졌다. 해찬이는 주사 맞은 보상으로 산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야무지게 퍼먹으며 책에 푹 빠졌다. 마법천자문....고맙다..

6시에 들어온 남편은 내일이 내 생일인데 한다는 소리가 냉장고 오래된 카레나 빨리 먹자는... 당당히 꽃 한송이 없이 빈 손으로 들어온 것도 모자라  식당 예약한 것도 아니고 뭐어 카레!! 해찬이한테는 내일 엄마 생일인데 뭘 준비했냐고 하니까 암것도 없단다.


그렇지.
역시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너덜 상관 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 산다.  돈은 다 내 손 안에 있느니라.

'개인적이면서개인적이지않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 한해 정리, 그리고 2023년 맞이  (0) 2023.01.01
고인 물이 되었다  (0) 2022.09.20
생각들  (0) 2022.09.07
온전한 내 것  (0) 2022.08.28
새벽 새소리  (0) 2022.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