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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영화 <사라의 열쇠>와 <그을린 사랑>

by 기름코 2011. 11. 9.


 

 -자제한다고 노력했으나 스포가 될지 모르므로 주의!!-


이 영화들을 본 건 어느덧 두 달 전이 되어버렸다. 보자마자 꼭 후기를 써야지 라고 결심했었는데,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제야 쓴다. 

퇴근하자마자 광화문 씨네큐브에 <그을린 사랑>을 보려고 달려갔는데 10분 늦게 도착했다고  못 들어가게 하더라. 예매 미리 안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다음 상영은 몇 시간 뒤. 대기 시간이 너무 길긴 하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냥 집으로 갈 순 없는 노릇. 그래서 그 사이 시간에 상영되는 사라의 열쇠를 아무 생각없이 선택해서 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연찮게 본 <사라의 열쇠> 역시 <그을린 사랑>처럼 '역사와 맞물린 개인사'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운명처럼 두 영화를 연속으로 같이 본 건 매우 탁월한 조화였다. 이거봐, 인생은 예측 불가 영역에 행운이 도사리고 있다니까!!


1. 사라의 열쇠 : 무지나 망각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사건이 주재료다. 그 사건을 한 여성 저널리스트가 파헤쳐 가는 이야기. 학살이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어린 아이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이 클리세가 되어버린 소재를 신선하게 살렸다. 어안이 벙벙하게 자기 의지와 무관한 역사를 마주해야 했고 생존해야 했던 그 시대 유대인의 무기력함을 '어린아이' 이기 때문에 잘 표현할 수 있었다고 본다. 어른도 완전히 타의적으로 휘둘리는 역사 속에서 도대체 애 따위가 뭘 어쩔 수 있었단 말인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피해가 연속되는 상황에서 그나마 열쇠로 옷장 문을 잠가 남동생을 숨겼던 것과 수용소에서 도망쳐 그를 구하려 했던 사라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위대한 것. 그러나 결국 참혹한 결과로 끝나버린다.

열쇠로 문을 여는 행위는 과거를 '본다'는 상징임과 동시에 가슴 아픈 역사의 순간. 보지 않고 그냥 애 답게 잊고 살았어도 됐는데...... 그 이후, 사라가 걸어간 길은 영화에서 담담하게 그려진다. 화면은 성인이 된 사라의 표정없는 얼굴만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눈빛이 관객 눈에서 살짝 물을 뽑아 낸다. 살아 남은 자들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었다는 참담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했던 인생도 덮어두기 보다는 후세대에 의해 밝혀지고 기억되는게 더 옳다는 주장을 저널리스트인 여자 주인공의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어야 되냐 안 되냐에 대한 토론에 앞서 이 영화를 본다면, 제대로 된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그 서사가 계속 이어지게 하는게 꽤나 근사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거칠게 저항만 하다가 결국엔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사라의 아들의 변화는 울컥했다.

무지나 망각은 극복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수용과 이해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지.


2. 그을린 사랑 : 왜 최후에 모든 일은 밝혀져야만 하는가?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서 가장 최고로 우울했던 영화다. 보고 나서 완전 힘 빠져서 집까지 힘들게 왔다. 마중 나온 남편이랑 괜히 투닥투닥 싸웠을 정도로 우울해졌다.
영화 포스터엔 충격, 전율, 감동이라고 써있는데 나는 솔직히 충격, 전율만 있었고 뭉클한 감동은 없었다. 마지막 결말조차 내겐 너무 가혹하다. 심각한 무기력증이 전염됐을 정도다. 그녀는 사실 용서를 한 게 아니라  용서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공유할 수 없는 참담한 비밀을 간직한 사람의 생은 너무나 고되고 힘들다. 자식에게도 한평생 이해받지 못하고 살다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입을 열고 이해받을 수 있었던 삶. 근데 왜 꼭 그 개인사에 대해 입을 열어야했는지도 의문이 남는 삶.

후세대인 자식들에게 굳이 안 알려도 될 진실을 다 밝히는데 그녀는 왜 그랬을까? 자신의 마지막 짐을 덜고 싶어서?  같이 살 때도 충분히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어머니였는데 죽고 나서도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현실 속 어머니들은 평생을 비밀로 하지 않았을까. 내가 그 자식이라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우울증 걸릴 것 같은데.

인물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당시 레바논의 묘사된 상황이 정말 미쳤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미친 시대속에서 인간은 이렇게 무방비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결국 용서만이 작고 여린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동적 선택인가. 전반적으로 내용이나 결론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터라 정신을 난타당한 기분. 그 멍이 일주일을 갔다. 이 영화는 수작임에는 분명하지만 웬만하면 다시 꺼내보고 싶지는 않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미간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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