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가는건전지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by 기름코 2012. 12. 17.

 

 

* 12월 16일 남편과 집에서 감상

 

1. 맥신에 관하여

 

맥신은 존 말코비치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들어가는 것도 원치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다. 크레이그 슈와츠나 그의 아내 라티는 모두 자기 삶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고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에 엄청난 흥미와 매력을 느꼈던, 맥신과 대척점에 선 사람들. 그들은 맥신에게 점점 빠져든다. 내가 생각할 때 그 이유는 맥신이 흔들리지 않는 자아를 지닌 자신감 있는 사람이기 때문. 호불호의 표현이 무례하게 여겨질 정도로 뚜렷하고, '존 말코비치 되기' 보다는 '맥신 되기'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주변의 사랑과 에너지를 흡수하여 더욱더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맥신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2. 라티와 크레이그에 관하여

 

라티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도 남편 눈치 보느라 자기 주장을 못하는 소극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존 말코비치가 된 후, 본인으로서는 가져보지 못했던 강한 자아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새로운 성적 정체성을 경험한다. 그 경험 후 남자가 되는 건 멋진 경험이었다며 성전환 수술을 고려하게 되고, 나중엔 아예 존 말코비치의 몸 속으로 들어가 맥신과 사는 것을 계획한다. 하지만 계획은 실패. 다행히 라티 자신으로서 맥신의 사랑을 얻는 데에 성공하여 둘은 행복하게 산다. 라티는 남자로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기 자신 안에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이겠다." 며 덤비는, 무식할 정도의 대담무쌍함이 숨어 있었음을 발견한다. 반면 끝까지 존말코비치에 기대어 그 안에서 살길 고수한 크레이그는 결국 타인의 자아 안에 갇혀 남의 인생을 관망하며 살아야 하는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맥신이라는 여성을 중심에 세우고 라티와 크레이그의 대조적인 결말을 배치한 것은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다. 맥신처럼 강한 자아를 타고나는 인간이 있다면, 흔들리고 방황하며 라티처럼 자기 길을 찾아가는 인간이 있고, 평생 남의 흉내나 내다가 결국엔 자기 인생에서조차 버려지는 크레이그 같은 인간도 있는 것이다. 

 

3.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처럼 초자연적인 이야기 

 

세 인물 외에 곁가지로 재미난 이야기는 타인의 의식에 계속 옮겨 붙어가며 영생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다. 한 사람 안에 여러 명의 노인들의 의식이 우르르 들어가 모여살게 된다는 것인데, 이게 참 흥미로웠다. 여러 개의 자아가 모여 하나의 인간을 이루어 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노인들한테 의식을 점령당한 말코비치가 "위 아 존 말코비치." 라고 말하곤 씩- 웃으며 그냥 끝나버리면 어떡해. 영화 <아이덴티티>처럼 다중인격 인간 하나 탄생인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