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가는건전지

쿠바의 연인

by 기름코 2011. 2. 9.

가츠동 하나로 배가 안 차 밥 하나 더 추가해서 먹고 급체하는 바람에 힘겹게 봤던 다큐. 부대끼는 속으로 흔들리는 화면을 보느라 더욱 힘겨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재밌었다. 토를 참아가며 봤을 정도로 재밌으니, 사랑하는 지인들에게 꼭 보라 추천하고 싶고, 꼭 다시 보고 싶다.




0.

달지기님의 트윗을 통해 월-목 동안 씨너스 이수에서 사랑을 주제로 영화 5편이 상영된다는 정보를 접했다. 효진이가 다녀온 '쿠바' 라는 나라에 대한 호감도가 커지고 있는 요즘이었는데, '쿠바' 게다가 '연인'이라니 버틸 재간이 있나. 쿠지부르스에게 바로 카카오톡을 쳐서 약속을 잡아 보러 갔다. 이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트윗과 카카오톡이라니!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싶어 갑자기 좀 아찔해진다. 

영화는 8신데, 수진이와 여섯시 즈음 만나 태평백화점 근처를 휘휘 둘러보며 저녁거리를 찾았다. 잘 안 가는 동네까지 행차했으니 뭐 좀 새로운 거 먹어볼까 했지만, 내가 택한 것은 익숙한 맛을 보증하는 <하코야>. 쿠바에 가서도 맥도날드를 가는 마음이란 이런 것일 듯.

불현듯 떠오르는 <쿠바의 연인>속 한 여인의 말.  
모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 여기저기 퍼져 있는 이유가 인간은 새로운 것,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역시 나도 쿠바 밖으로 나가 이 곳과는 다른 공기를 마셔보고 싶다고.  

근데 난 벌써 그 원시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예측불가능함이 주는 두근댐보다 투자한 가격 대비 예측 가능한 확실한 맛을 더 편안해하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택한다. 바로 이런 것이, 최악의 실패는 없지만 슬픈 인생이다. 또한 개인에게 그런 선택권밖에 줄 수 없는, 이 자본주의 소비 사회도 슬픈 것은 마찬가지. 노상시장에 가고 싶어도 사방이 대형마트 뿐이면 난 어떡해. 정말로 그런 날이 기어이 오고야 만다면, 음...  



1.  

<쿠바의 연인>은 짜고치는 대본이 없다는 점에서 다큐다. 그런데 오직 웃기기만을 위해서 짜고치는 코미디 영화보다 더 웃기는 장면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냥 피식 웃어버리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내서 깔깔 웃게 만드는. 지금도 생각할수록 웃겨죽겠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혼자 실실 웃었다. 스포가 될까봐 여기다는 세세히 못 써놓지만, 지하철에서 지옥과 말세를 설명하던 한국어르신과 쿠바에서 만원버스로 힘겹게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심오한 말을 외치는 아저씨의 대사가 백미다. 나도 그 아저씨처럼 2호선 탈 때 인간의 따뜻한 영혼을 부딪히며 기를 나눠갖는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야겠다. ㅋ

그런데 그렇게 웃다가 파도같은 웃음이 썰물처럼 가시고 나면 대신 묵직한 자갈같은 것을 가슴에 남긴다는 점에서, 이것은 '작품'이다. 웃음이란 파도가 우리에게 오면서 그 속에 쓸어가지고 온 '알맹이'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2. 

'한국식' 개신교도 선입견이 없다면 호의로 여겨질 수 있음을 남주인공 오리를 통해 알았다. 장모님의 구원과거듭남 타령에 "장모님이 갖고 계신 가장 좋은 것은 구원이란 믿음과 종교니까 그걸 내게 주고 싶어하시는 거라 생각해. 하지만 이거 외에 나머지는 다 틀렸다 식의 논리는 안된다고 봐." 라고 얘기하는 오리군. 훈훈하다. 몸도 섹시한데, 생각도 섹시하구나. 웃통 벗고 앞치마만 두르고 설거지하는 아름다운 정경을 내게 선물해주었던 오리군, 여러모로 훌.....훌륭하다!

나도 앞으로 오불이가 내게 뭔가를 자꾸 권유하고 또 권유하는 일이 있으면, 짜증을 내지 말고 그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내게도 꼭 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야겠다. 내 입장에서만 판단해서 저 사람 이상하다, 짜증난다 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 서본다면 내 정신을 위해서도 좋고 관계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다. 대상에 대한 선입견, 화자만 보고는 내용을 듣기도 전에 늘상 반복되는 대화패턴이라고 시작부터 규정지어버리는 습관 등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부터 고쳐야지.



3. 

<쿠바의 연인>은 쿠바란 나라에 대한 설명과 오리엘비스(이름 맞나? ^^;;) 라는 연인에 대해 각각 다루면서도 그 두가지 키워드를 환상적으로 잘 맞물리게 해서, 결국 연애란 것은 혁명과도 같은 것임을 이야기한다. 사회주의 나라 쿠바의 남자와 초절정 자본주의의 나라 한국의 여자가 만나, 서로의 지경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투쟁하고 끊임없이 변하고 또 변하는 과정이 혁명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또, '연애란 자기애의 확장일 뿐' 이란 냉소적인 말이 있을 정도로 이기적인 인간인데, 그 본성을 잠시 잊고 서로에게 열중하며 사랑하니까, 인간 내부 혁명 그 자체. 여주인공이자 감독이 쿠바를 열심히 다루는 것은 연인을 이해하고 관계에 열중하고자 하는 혁명의 소중한 여정일 수도 있다. 

근데 오리란 사람의 특수성 보다는 쿠바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이 더 부각되어서, 좀 아쉽긴했다. 여주인공도 개인성보다는 한국인 가족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지닌 정체성의 일부를 간접적으로만 보여준 것 같아서 일본스러운 달달함과 세세함은 좀 부족했다. 로맨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되는 남주인공의 이 닦는 방향이나 즐겨마시는 와인 종류, 여주인공의 손톱뜯는 버릇 같은 게 안나오니, 신선하면서도 어색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래서 더 좋았다' 라는 결론으로 마무리짓게 됐다. ㅎ 주제의식에 충실한 다큐였어! 



4. 

"너의 올해 오르가즘 계획은 어떻게 되니?" 

성이라는 이슈에 대해 개방적이고, 성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쿠바인의 가치관을 한 번에 드러나게 해준 훌륭한 편집. (잔뜩 찍어놓고 자르고 붙여 편집한 게 다큐니까, 대화 중 튀어나온 저 말은 대사라고 표현하기엔 좀 그래서 편집이라 썼다.) 

오르가즘이나 성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편인 난, 짙은 동질감을 느끼며 깔깔 웃었는데 어르신들은 이런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모르겠다. 혹시나 못사는 나라라서 미개하다고 여기진 않을지. 첫장면부터 민망한 라틴댄스를 추어대는 여자들이 나오는데, 혹시나 보수적인 어른들이 이런 면 때문에 안 그래도 사회주의라서 어색한 쿠바인데 더 선입견을 갖게 되진 않을지 우려된다. 성에 대한 보수성 특히 여성의 순결과 성에 대한 압박이 덜한 나라일수록 사회의 행복지수는 높다고 생각해왔는데, 쿠바를 보면서 (단, 경제만 좀 나아지면 더 좋겠지) 그 생각의 증거를 하나 더 추가한 기분이었다. 

학부 때 '성철학과 성윤리'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모든 이의 성 가치관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그리고 더 나아가 신념을 갖게됐다. 순결주의자들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얘기하는데, 그 만큼의 발언의 자유와 권리가 다양한 성소수자들에게도,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기혼들의 성생활 외에 비혼 혹은 미혼이지만 성을 향유하는 자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남에게 '손실'을 입히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다양한 성적 취향들도 그들의 존재마저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타인의 '손실과 피해'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자신의 불관용을 정신적 피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내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 동성애에 대한 개인의 불호를 본인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혔으니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그 예다. 

쿠바의 연인 감상평 쓰다가 왜 여기까지 또 늘어지게 되었나. 성에 관한 얘기는 여기서 일단 마침. 암튼 19금이라서 좋다고~신나게 떠든다. ㅋㅋㅋ 


5.

소비물품과 소비수준으로 개인의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한국에서 "나는 내가 가져야 하는 것, 갖고 싶은 것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라고 말하는 오리의 말이 남는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박민규가 꼬집은 내가 지닌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이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이 사회의 원동력인 한국은 그리고 그 속에서 그럭저럭 살아남은 나는 병들어있다. 건강한 사람을 보니, 내가 병자란 생각이 확실히 든다.  



6. 

그들의 결혼식이 보기 좋았다. 식을 마치고 신랑 신부가 신나게 춤한판 추어대는 것이 어찌나 행복해보인던지. 그들처럼 그리고 고야언니처럼 작은 장소에서 식구들과 친구들을 조촐히 초대해서 소박하게 치루는 예식을 나도 하고 싶었으나 이미 장소는 대중적이면서도 넓은 데고, 그래서 텅 비면 쓸쓸할까봐 벌써부터 하객수를 걱정하는 내가 안 됐다. 자신있게 초대할 말한 하객수를 생각하면 사실 안방만한 데서 결혼해도 되는데.....엉엉 ㅜㅜ 그래도 나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게 결혼이니까, 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두 사람이 같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잠시나마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오빠도 내가 촬영하고 있으면 오리처럼 내 발가락에 뽀뽀하면서 야릇한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로 이제 카메라 꺼, 라고 해줄까. 우히히히히 나 그런 거 좀 기대하고 살아도 되는 걸까. 오빠도 홀랑 벗고 앞치마 두르고 집안일 할까. 우히히히히 나 그런 거 좀 기대하고 살아도 되는 걸까.

결혼식 하루 전 날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소리치면서 네가 이해가 안 된다고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아 우리 커플만 그러는 게 아니군요! 란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놈의 '이해' 라는 게 가능이나 한 건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속 박민규의 말처럼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에 불과한 것이 아닐지.

그래도 그런 우리가 만나 '사랑'을 하고 있고 앞으로 계속 사랑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일부만 더듬다가 결혼하는데, 결혼하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발견이 이뤄질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 :) 빙긋.

'오래가는건전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혜로운 이의 삶  (6) 2011.04.27
즐거운 나의 집  (3) 2011.03.02
박완서 선생님  (2) 2011.01.23
제 정신의 끝  (0) 2011.01.20
언제까지 그럴 것 같아요?  (5) 201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