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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폴 오스터는 왜 쓰는가?

by 기름코 2014. 2. 8.

오늘 하나가 보내준 글




왜 쓰는가?, 폴 오스터(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2005.


 


p. 37~41


WHY WRITE? 5


 


 나는 여덞 살이었다. 내 인생의 그 순간, 나에게 야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은 뉴욕 자이언츠였다. 나는 검은색과 오랜지색의 야구모를 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진정한 신자답게 열심히 지켜보았다. 그 팀은 이제 존재하지 않고, 그 팀이 뛰었던 야구장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 팀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명단에 실린 선수들의 이름을 거의 다 술술 읊어댈 수 있다. 앨빈 다크, 화이티 로크먼, 돈 뮐러, 조니 안토넬리, 몬티 어빈, 호이트 빌헬름……. 하지만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누구보다도 완벽하고 누구보다도 존경스러운 선수는 바로 윌리 메이스, 눈부시게 및나는 <세이 헤이 키드>였다.


 그 해 봄, 나는 난생처음 메이저 리그 경기를 보았다. 부모님 친구들이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폴로 그라운드에 지정석을 갖고 있어서, 4월 어느 날 밤 우리는 자이언츠와 밀워키 브레이브스 팀의 경기를 보러 갔다. 어느 팀이 이겼는지는 모르겠다. 경기의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도 부모님과 친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다른 관중이 모두 떠날 때까지 그대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너무 늦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센터 필드의 출입구까지 걸어가야 했다. 아직 열려 있는 출입구는 그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 출입구는 선수 로커룸 바로 밑에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 담장 쪽으로 다가가고 있을 때 나는 윌리메이스를 보았다. 그게 누구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분명 윌리 메이스였다. 그는 벌써 유니폼을 벗소 평상복 차림으로 나한테서 3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나는 간신히 두 다리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간 다음, 있는 용기를 다 짜내어 몇 마디 말을 억지로 입에서 밀어냈다.


 "메이스 씨, 사인 좀 해주시겠어요?"


 그는 기껏해야 스물네 살이었지만, 나는 감히 그를 윌리라고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반응은 퉁명스러우면서도 상냥했다.


 "물론이지, 꼬마야. 해주고말고. 연필 갖고 있니?"


 내 기억에 그는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젊은의 활력이 온 몸에 넘쳐흘러서, 말을 하면서도 계속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연필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한테 연필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아버지도 연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머니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른 어른들도 모두 연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위대한 위릴 메이스는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가운데 필기도구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분명해지자, 그는 나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하다, 꼬마야. 나도 연필이 없어서 사인을 해 줄 수가 없구나."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야구장을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내내 울었다. 물론 나는 몹시 실망했지만, 그보다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나는 아기가 아니었다. 여덟 살이나 먹었으면 그런 일로 울어서는 안 된다. 나는 윌리 메이스의 사인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전혀 얻지 못했다. 인생은 나를 시험했지만, 나는 모든 면에서 낙제였다.


 그 날 밤 이후, 나는 어디에나 연필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 연필로 뭔가를 하겠다는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싶었다. 빈손일 때 한 번 당했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작정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세월은 나에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내 아이들에게 즐겨 말하듯, 나는 그렇게 해서 작가가 되었다.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