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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휴게소

일본 간사이 여행 2

by 기름코 2013. 1. 29.

1월 20일 여행 둘째날.

 

오전 7시에 교토를 간다는 계획은 무너지고 10시 가까이에 일어나 씻고 짐을 쌌다. 그리고 바로 교토를 가기는 커녕, 여유 넘치게 시장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일본 음식을 여러 가지 맛보자는 생각에 무려 부페로 들어갔다. 관광객은 우리 뿐이고 손님들은 모두 현지인들. 탁월한 선택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영어 메뉴가 없고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점. 눈치껏 집어다 먹었다. 나중엔 재일교포 여학생들이 한국어로 잔반 처리도 도와주고 양념 설명도 해주었지.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운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가격은 부페치고 매우 저렴했다. 1인 당 1200엔 정도 낸 듯.

 

 

오코노미야키와 나베를 손님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우리가 오전 11시 오픈 손님이었기 때문에 방금 만든 신선한 튀김을 먹을 수 있었다. 연근, 고구마, 찹쌀떡, 야채 등의 튀김 향연. 바샤샥 거리고 맛남!

 

요것은 나베를 끓이는 코너.

 

일본 가정식 밥도 즐길 수 있다. 생강밥과 초절임밥 그리고 갖가지 일본식 밑반찬들.  물론 소바와 우동도 있다.

 

간장 졸임 어묵 및 야채. 맛있어! 우리나라랑 비슷한데 더 짜다.

 

 

 

 

오직 느낌으로만 오코노미야키를 빚어내고 있는 쩡샤. 

말로는 소극적으로 "기대하지 마." 라고 방어했지만, 손놀림에는  말도 안 되게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터지고 있는 이 사람.  

                 

 

              친구의 노력에 열과 성을 다해 보답하는 나. 

              하지만 비주얼 보고 눈가에 살짝 절망이 맺혔다는 건 비밀.

 

                 그래도 부페라서 기대가 분산되니 다행이에염!

 

나베에 우동 넣어 먹은 것도 괜찮았고, 후식으로 먹은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실속있게 맛있었다.  식당이 구색 맞추기로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었다. 

 

 

자, 이제 배도 채웠으니 다시 숙소로!

가는 길에 숙소 앞에 있는 예쁜 맨션 앞에서 사진도 찍고~

일본 주택가는 결벽증처럼 느껴질 정도로 깨끗 초깨끗 완벽깨끗 중 하나다. 그 이하는 일본에게 있을 수가 없어.

도로가 우리집 거실보다 청결해보임. 겨울만 아니면 진짜 노숙해도 됨.

 

 

 

 

드디어 우메다에서 교토로 가는 특급열차를 탔다.

해외여행은 늘 혼자 다니다가 일행이 있으니 이동이 즐거웠다. 든든하고!

 

특급 열차는 15분 간격으로 자주 오는 데다가 45분이면 교토에 도착한다. 운임도 450엔 정도로 저렴하고, 교토에 가면 500엔짜리 1일 버스 이용권을 사면 되기 때문에 굳이 간사이쓰루가 필요 없었다, 괜히 5000엔 주고 3일권 샀어 ㅠㅠ  하루에 2000엔 정도를 교통비로 쓰는 일정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 교통비에 간사이 쓰루를 이용한 것은 절약이 아닌 무지에서 온 돈 낭비였다. 

 

 

#1. 기요미즈테라  

 

교토에서 우리가 묵을 숙소는 고쿠사이 호텔. 니죠죠 바로 앞에 있는 매우 좋은 비지니스 호텔이다. 니죠죠인지 니죠에키인지 헷갈려 하다가 (죠는 성이고 에키는 역이란 뜻) 나 때문에 에키에서 내려버려서 간신히 물어물어 호텔까지 갔다.

내가 여기서부터 쩡샤를 재발견했다. 인간 구글번역기. 인간 네비게이션.

상대방이 일본어 100% 로 쏼라쏼라해도 눈치껏 다 알아듣는 여자.  대강의 얼버무리는 듯한 설명도 상대방의 무의식을 읽어 내어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목적지까지 자석에 끌리는 철가루마냥 척척 찾아가는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ㅡ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4시......쯔음?

'20일 관광은 텄네 텄어.'  좌절의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어지러운 정신을 그러모아 관광책자를 보니, 교토 관광객의 90%가 찾는다는 기요미즈테라가 눈에 띄었다. 

 

"그래 여기다!! 오늘 딱 한 군데 간다면 여기밖에 없다!!" 

 

기요미즈테라를 본 뒤 밤에는 기온 거리에서 향략의 밤을 보내기로 쩡샤와 계획을 세웠다.  물론 이 모든 계획의 배경엔 호텔 로비 직원의 설명이 깔려 있다. A부터 Z까지 다 물어봤다. 우리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교토에 간 것이다.

 

버스에서 쩡샤. 뒤에 교토버스가 지나가길래 얼른 한장 찍어보았다.

찍사의 판단력과 모델의 순발력이 이루어낸 걸작.

 

 

버스로 기요미즈테라역에 도착하니 4시 반. 나의 당고 예찬가 때문인가 교토에 오자마자 당고 당고 노래를 불렀던 쩡샤는, 갑자기 당고 귀신이 씌었나  역 바로 앞에 보이는 당고집에서 당고를 먹고 가자고 했고, 사원이 역 바로 근처에 있을 줄 알았던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 그러마." 하고 허락하고야 말았다. 결론은 먹자고 한 너나 그러자고 한 나나 둘 다 미친겨!!  다섯시에 문 닫는 거 뻔히 알면서!! 심지어 절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하지만 당고 자체엔 아무 죄가 없으니 여기서 잠시 소개.

불에 구운 뒤 여러가지 고물에 묻혀서 차와 함께 먹는다.  이 고물들 고르느라고 일본어 할 줄 모르는 두 여자가 손짓 발짓해가며 아까운 시간 소요. 우리 둘의 행태가 만담쇼와 같았기 때문에 주인 내외는 우리 때문에 빵 터졌다. 심지어 우리는 1분 만에 털어 먹고 일어났다. 얘들이 천천히 담소 나누며 먹으라고 존재하는 비주얼이지 우리처럼 그러라고 존재하는 비주얼이 아닌데.

 

사진 상으로 보면 당고알이 커보이겠지만 하나가 내 새끼 손톱만하다.

한 줄이 내 새끼 손가락 길이임.  쩡샤가 사줬다.

 

 

 

 

 

기요미즈테라로 올라가는 길에 본 인력거와 기모노 차림의 여인들.

 

 

 

 

헉헉 거리며 계속 올라가다보니, 드디어 등장한 기요미즈테라 입구.  해는 이미 거의 다 졌다. 관람 시간은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울음이 터져나오려고 했고 안절부절 쩡샤는 미안하고 안타까웠는지 내 입장료를 내주었다. 부욱- 튀어나온 내 입이 쩡샤의 지갑을 열었다. 미안했다. 이따가 더 맛난 당고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고운이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기요미즈테라는 낮보다는 밤에 보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너무 짧게 봐서 아쉬웠지, 풍경 자체는 매우 마음에 들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

 

밤이라 그런지 사당 안에 등불이 운치있게 켜져 있었다.

 

 

이것은 기요미즈테라의 상징적인 풍경이다. 한 낮 가을 풍경이 관광 책자 마다 실려있는 매우 유명한 경관인데, 우리가 본 것은 해 진 후의 모습.

 

 

 

 

누각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교토의 야경

 

 

밤의 기요미즈테라는 조용하고 경건했으며, 아름다웠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쫓기는 시간 중에서도 나의 마음은 살짝 정화.

 

 

성당의 성수마냥 절에도 언제나 있는 약수(?)를 마셨다.  유럽의 오줌싸개 소년의 오줌발처럼 위에서 좌아악 떨어지고 있는 물줄기에 긴 손잡이의 바가지를 대어 마신다. 역시 일본 답게 바가지들은 자외선 소독기의 빛을 쐬며 대기중 이었다. 근데 나는 쩡샤의 사진을 이렇게나 디테일하게 잘 찍어주었건만...

 

 

 

나는 100명 중 1인으로 찍어놓았다. 주인공이 누구야? 암튼 고마워. 그리고 쩡샤는 그냥 입 대고 후루룩 마셨지만 나는 문명인답게 손 위에 살짝 따라서 물 맛을 음미하였다.  쩡샤가 그렇게 마시니까 다른 관광객이 다 풀하하하하헐헐ㅋㅋㅋ 하고 비웃었던 게 기억난다.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안내방송이 엄청 친절한 목소리로 빨랑 나가시요들! 하며 엉덩이를 자꾸 차댔다.  칼 같이 오후 5시에 나오게 됐다.

 

내려가는 길에 형성된 아름다운 가게 거리. 오후 5시밖에 안됐는데, 거의 다 문을 닫았다.  관광지가 이런데 하물며 다른 곳은 어떠할까. 일본은 저녁이 있는 삶을 국민 모두가 이미 살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내려가는 길에 과자를 사먹었다. 쩡샤는 김과자 나는 설탕범벅과자.

 

 

또 컵 사는 거냐고 호통치는 남편의 육성이 들리는 듯 하여 사지 않았던 컵.

 

귀여움에 혹해서 사봤자 1개월 뒤에 스리슬쩍 집 구석 어딘가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사지 않을 수 있었던 귀염둥이들. 나도 참 다 컸네.

 

가게 주인의 센스가 보였던.

 

그냥 어느 집. 올망졸망 화분들이 놓여있는 게 귀여웠다. 일본인들의 올망졸망 미적 센스는 최고다. 지저분해보이지 않고 예쁘기만 하다.

 

기요미즈테라로 가는 길에 보았던 사원? 탑?. 맨 처음엔 이게 기요미즈테라인 줄 알았다. 해가 지니까 더욱더 멋있게 보였다. 귀기가 서려있달까. 그 밑에 서있는 각잡힌 일본 택시도 잘 어울린다. 가장 교토스런 정경이 아닌가 싶다.

 

 

 

#2. 교토 기온 거리

 

쇼핑 아케이드를 쭉 걸으며 저녁밥을 물색했다. 교토에서만 볼 수 있는 유명한 화장품 브랜드인 요지야도 걷다보니 보이길래 구경했다.  요지야에서 일본인들의 색의 세계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색깔의 섀도우의 향연.  일본인 화장은 볼터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온갖 볼터치들의 축제. 여기서 볼 터치를 하나 발라봤는데 당고 가게에서 만난 일본인 할머니 손님이 내 볼 보고 예쁘다고 해주었다. 이들에겐 화사한 볼터치가 미의 키포인트인가!!

 

 

우리에게 간택된 당고집. 왕떡으로 승부한다. 내국인 손님들이 우리에게 오이시이~ 하며 강력추천 해주셔서 먹어봤다.

 

맛있다!!

 

 

기온을 흐르는 강이다.  고운이의 말에 따르면 강가를 따라 자리잡은 식당들은 합리적인 가격대와 고품질의 맛을 보장한다고 한다.  강가뷰라서 비쌀 줄 알았는데 오판이었다. 일본은 비싼 집과 싼 집의 가격차가 크지 않으니, 잘 모르면 일단 고급스러운 데를 가는 게 오히려 돈을 버는 것이라고 고운이가 설명해줬다.

 

 

드디어 기온의 메인 거리로 들어섰다. 여기서 진짜 게이샤도 봤다!! 한 손에 전통악기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사진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못 찍었는데 아쉽다. 

 

                                                얼씨구나~ 신났구나~

 

 

기온 거리의 가게들은 하나같이 너무 다 예쁘다.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한 폭의 일본화 속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리고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 수의 가게들이 '들어오든지 말든지'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앞에서 사진 찍은 가게도 그들 중 하나.  일본어로 메뉴판만 간단히 내보였을 뿐. 일자무식인 나같은 관광객은 훠이훠이~ 내쫓기고 있다.

 

 

 

가게들이 아름답고 정갈해보이는 만큼 가격이 어느 정도 예상되어 심장이 떨렸지만,  아무렇게나 되어버려라 라는 호기를 부리며, 가장 바글거려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둘 다 스끼야키는 한번도 안 먹어봤는데, 하필 스끼야키집이었다.  2명이 1인분을 시켜도 된다고 하길래 당고 덕에 배가 안고팠던 우리는 1인분과 맥주를 시켰다. 가격은 생각보다 안 비쌌다. 맥주까지 합해서 1인당 2000엔 정도 낸 것 같다.

 

 

 

 

 

 

 

맥주는 역시나 맛있었다. 나는 무알콜 맥주를 시켰는데도 맛이 괜찮았다. 하지만 병맥이라 그런지 오사카에서 먹은 입술 애무 생맥은 이기지 못했다. 스끼야키는 달큰짭짤한 일본인의 미각에 맞는 맛이었다. 달큰짭짤을 다시 날계란에 넣었다 먹으려니 살짝 느글거렸지.  둘 다 여기에 쌀밥을 추가해서 말아 먹으면 딱인데 하고는 아쉬워했다. 한국이었으면 메뉴판에 공기밥 하나가 올라가 있을 것인데.  아아 일본인이여 너희들의 미각은 언제나 2% 우리에게 모자라!!

 

 

밥을 다 먹고, 기온 거리를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또 다른 <들어오든지 말든지> 가게 앞에서

 

 

어느 가게 앞에 놓여있었던 귀염둥이들. 일본인들은 토끼를 엄청 좋아한다.

 

화통한 중국인 아저씨가 찍어주신 우리 사진.

 

                         내 뒷통수를 내리 꽂고 있는 사나운 눈초리

 

기온 강 다리 곁에 있는 마이코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쩡샤는 마이코의 새침한 얼굴을 흉내낸다고 낸 게 저거임.

반면 나는 포즈를 완벽재연해 내었지.   

 

 

 

가게 물건 팔아주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폐를 끼치고 다니었다.

 

          문 닫은 가게의 셔터도 이방인의 눈에는 이국적이고 아름답게 보여!

기온 거리를 쏘다니다가 다시 출출해진 피그 넘버원, 넘버투는 아까의 그 당고집으로 가서 당고를 또 사먹었고, 다른 당고 가게에도 가서 당고를 사서 숙소까지 가지고 왔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막차 버스를 탔다. 무슨 도심의 막차가 밤 10시 반 정도인지... 서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쩌면 이것이 삶의 질일지도 모른다. 버스 운전기사님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사실 듯.  

 

사 온 당고를 숙소에서 짭짭짭 먹으며 내일은 꼭 아침부터 움직여서 금각사 은각사 다 보자고 굳은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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