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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책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2

by 기름코 2022. 4. 19.

이 책 덕분에 내가 페미니즘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자본주의에 뿌리를 둔 능력주의, 성과주의였단 걸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나서 나를 돌아보고, 가격표가 붙지 않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엄마의 노동을 폄훼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참 오만했다. 

나를 붙들고 있는 자본주의가 뭔지 제대로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지만 그 신화에서 벗어난 다른 삶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복태와 한군>이라는 부부 듀오 가수 인터뷰를 발견하게 됐다. 


복태와 한군, “우리는 가치관이 같은 토끼와 거북이예요” < 문화와 사람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catholicnews.co.kr)

한군을 만나 듀오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게 된 후에도 목수에게 축가를 불러준 뒤 원목 침대 프레임을 선물 받기도 하고, 한군이 우쿨렐레를 가르쳐준 이들에게 수화를 배우기도 했다. 첫째 지음이는 두 돌이 될 때까지 기저귀를 산 적도 없다. 지인들에게 공지를 띄워 ‘기저귀 릴레이’를 했다. 인덕(人德)을 중요시 여기는 부부의 주변에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부부는 “소비를 재촉하는 도시 시스템 안에서 그걸 외면하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자급자족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복태 씨 재주가 많으신 것 같아요. 요리도 잘 하시고, 양갱, 잼도 만드시고 옷도 만드시고.”


“예전엔 어른들이 재주 많으면 밥 굶는다고 하도 그러셔서 압박을 받았어요. 관심사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고. 그런데 저희 삶의 방식으로 가져오니 저는 정말 자급자족하는 삶에 최적화된 사람이란 걸 깨달았어요. 아, 나는 자본과 산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이구나 하고.” (복태)


“사회에서는 전문가가 되라고, 한 우물 파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저는 전문성이라는 게 오히려 인간성을 잃게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똑똑한 연구원이라고 해봐요. 그것밖엔 모르고 빨래도, 밥도 혼자 힘으로 못한다면 그건 오히려 다른 의미에서는 바보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싶어요.” (복태)


“진짜 훌륭한 인간이란 건, 의식주를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밥도 할 줄 알고, 설거지랑 빨래도 할 줄 알고, 집도 좀 고칠 수 있고. 인간으로 정말 필요한 기술이죠. 자기 삶을 알뜰하게 꾸려가는 게 ‘인간성’인 것 같아요.” (한군)


저 인터뷰 내용을 보고 머리에 산소가 새로 도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살면서 저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전문가가 되어라, 1등이 되어라를 부르짖는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심지어 교회에서도 자녀 교육을 할 때 능력있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하고, 하나님이 주신 부의 축복을 받아야 된다고 가르치는 판이다. 

나는 비록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해찬이는 저렇게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1등이 되고, 좋은 직장을 얻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서울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의 가치는 저런 성과나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겉으로만 가장했지, 내면 깊숙이 들어가면 나 역시 인간을 가격표 붙이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본주의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삶을 알뜰하게 꾸려가는 인간성을 나부터 회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