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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캐럴라인 냅 <욕구들>

by 기름코 2021. 8. 24.

<욕구들(Appetites)>은 저자 '캐럴라인 냅'의 거식증 성찰기이다. 저자는 본인이 거식증에 걸린 이유를 직접 심도 있게 고찰하는데, 그중 하나는 신생아부터 유년기시절까지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던 허기, 금욕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욕구를 억눌러야했던 경험 때문이다. 또 하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아, 자기를 망치는 방식으로 부모에게 상처 입히려는 심리 때문.

 

여기까지 들으면 '뭐 그래서 지금 프로이드나 융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것인가?' 싶겠지만, 저자는 역시나 퓰리처상 수상자답게, 거식증의 가장 큰 이유를 '여성 젠더'라는 사회적 정체성에서 찾는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사적인 질병으로 보이는 거식증을 개인 서사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의 담론으로 확장시킨다. 여성의 식욕 통제 기제를 사회와 연관시키는 방식이 요즘 시대에는 별로 새로운 접근이 아닌데, 캐럴라인 냅이 1959년생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냅의 사유는 어디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고유한 것이다. (역시 퓰리처....)

 

육체의 허기는 감정의 허기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감정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통제하려 드는데, 냅의 경우에는 그게 극단적인 식욕 통제 즉 거식증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통제 중에서도 이런 식욕 통제, 즉 ‘몸에 대한 통제’는 교묘하게 ‘건강’ 이라는 미명하에 도덕적으로 포장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문제가 있는 것인지 극단적인 거식증이나 폭식증에 이르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런데 냅은 이런 식욕 통제가 자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성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냅의 학창 시절은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의 시대를 열던 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유럽이 폭망하며 미국이 제1 국가로 도약하고, 이어지는 냉전에서 부전승을 거두고, 비록 베트남 전에서는 망했지만 덕분에 히피 등 자유로운 문화와 인권 의식이 싹트고, 흑인이건 여성이건 그동안 압제받던 모든 인간들이 자유와 풍요를 얻은 것만 같은 유토피아. 이 즈음 페미니즘도 격변기를 맞이하는데, 냅의 어머니 세대들이 ‘브라 태우기’로 대변되는 강렬한 저항으로 여성의 결핍에 적극 맞섰다면(참고로 미국은 1920년에야 여성 참정권이 헌법에 명시됐다), 냅의 세대에서는 몸을 통제하는 행위, 폭풍 쇼핑으로 은밀하게 사적으로 결핍을 메운다. 물질이건 권리건 자유건 모든 것이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결핍’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욕망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언어가 필요한데, 언어란 인간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호작용의 부산물이 언어인데, 모두가 자기만의 방에 꽁꽁 숨어 있는데, 어떻게 이 욕망과 결핍을 제대로 표현할 언어를 만들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냅의 시대에도 여전히 여성은 고통스럽다. 자유와 권리가 늘었다한들 여성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는 이중적인데, 예를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을 환영합니다. (단, 집안일에 차질을 주지 않는 선에서).”, “맥도날드의 맛있는 음식을 즐겨보세요. (단, 여자는 살찌면 매력 없어요).” 식인 거다. 여성은 갑자기 밀려드는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다가도, 그 뒤에 붙는 수많은 ‘단!’ 앞에 속절없이 불안해지고, 혼란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냅은 거식증 뒤에 숨어서 진짜 자기 문제를 외면하며 안도를 느낀다. 그런데 이게 과연 어머니뻘 냅의 시대에만 국한되는 얘기인가? 슬프게도 내 삶도 냅의 혼돈과 불안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해결방법이 무엇이냐?

 

독자의 답답한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냅은 자신의 경험을 빌어, 어떻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는지 알려준다.

 

첫 번째는 욕망에 이름 붙이기다. 뭘 자꾸 처먹고 싶거나, 아니면 뭘 먹으면 안 되겠다는 통제 욕구가 들 때마다 “네가 진짜 원하는 게 이 음식이니, 아니면 다른 거니?”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진짜 자신의 욕망과 대면하는 것이 두려울지라도, 그 욕망을 관철해가나기 위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하는지 똑바로 보고 응하는 용기를 가져보는 것이다.

 

“욕망에 이름을 붙여야 하고, 무엇이 그 욕망의 성취를 방해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상관하지 않은 채 억제를 부수고 나갈 힘과 용기와 자기수용을 이끌어내야 한다.”(359쪽)

 

두 번째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냅은 조정을 시작한다. 힘차게 노를 저어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면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몸을 통한 기쁨과 깊은 평온함을 느낀다. 이 운동은 헬스장에서 강박적으로 무게를 들고 내리며, 오히려 몸을 더 옥죄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과 다르다.

 

세 번째는 여성의 몸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다.

냅은 책 말미에서 언니의 출산 장면을 보며,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의 몸을 발견한다. 나도 이와 유사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역대급 몸무게를 갱신 중인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평안하다. 그 이유는 출산 후 내 아이를 보면서 내 몸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뱃살이 나오고 등살이 쪄도 나는 이 몸으로 무엇을 해냈는지 날마다 눈앞에서 똑똑히 본다.

 

나는 여기에 더해 한 가지 해결방법을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바로 연대하기!

 

나는 윗세대 여성들 그리고 후세대 여성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연대하고 싶다. 우리가 가진 욕구가 무엇인지, 그 욕구들이 왜 좌절됐는지, 우리의 결핍은 무엇인지 여성들과 대화하고 새 길을 열어나가고 싶다. 그리고 일단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수다를 떨면 기분이 조크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또게더를 십분 활용해보고자 한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또게더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