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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건전지

난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by 기름코 2019. 2. 12.
"딸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에바 초호기와 신지 같던(또는 태권브이와 훈이 같던) 우리 사이에 조금씩 선이 그러지기 시작했다. 시호는 점점 자라며 수백 개의 단어와 수십 개의 문장들. 수만 개의 생각들로 자기 세계를 쌓아갔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무리 자신만만하게 후우-하고 불어도 간단히 무너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집을 지었다.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바운더리가 생긴 것이다. 아무 때고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침범하던 나는 이제 아이의 초대를 받아야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아이는 엄마를 "무지개가 뜰 만큼" 사랑한다며 쑤욱 끌고 들어갔다가도 "이런 엄마인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말 걸 그랬어." 같은 고급 문장으로 문밖으로 쫓아내곤 한다. 물론 엄마인 나에게 대체로 아주 호의적인 집이라 다행이지만. 앞으로도 늘 초대받을 수 있도록 호감을 줄 수 있는 예의 바른 손님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 어른이고 부모인 나는, 자칫하면 아이가 만든 세계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내내 유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