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을 빙자한 반사회적 해법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의 수기를 모은 책이 있다. 이런 내용이 있다. 아이 종아리에 회초리 맞은 자국이 있었다. 이유를 물었고 아이는 자기가 강당에 모이는 시간에 자꾸 지각해서 맞은 거라고 했다. 잘못을 했기에 맞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할아버지에게 맞았던 기억이 났단다. 아들의 이 말에 엄마는 역시 ‘민사고에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이리저리 체벌을 정당화한다. 민사고는 규칙을 위반하면 학생 법정이 열리고 여기서 징계가 확정되면 회초리를 맞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지금은 고전 쓰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런 시스템의 우수성이 요즘 체벌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일선 학교에도 널리 알려지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어안이 벙벙하다. 체벌이라는 굳이 필요 없는 교육적 처사가 ‘민사고’라는 상징성 강한 배경에 다 묻혀버린다. 체벌은 효과가 없다. 만약 있다면 모두가 매 맞으며 자란 기성세대들이 만든 한국 사회가 이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때릴 때 때려야 한다’는 논리가 누군가에게 악용되면 체벌을 가장한 폭력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체벌이 가져다주는 효과 외의 것을 찾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그렇게’ 공부시키면 안 되는 것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인데, 최고의 성과를 낸다면 이 과정의 ‘어떻게’는 모두 정당화된다. 이것이 각자도생이 아니면 무엇인가. 연령대를 확 낮추어서 5세 아이에게 꼭 해줘야 하는 목록을 정리한 책도 마찬가지다.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는 책은 아이의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며, 엄마들이 먼저 친구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친구를 ‘반드시’ 만드는 것부터가 어색하기 짝이 없지만 그 노하우는 충격이다. 버젓이 이런 글들이 등장한다.
외모가 단정해야 한다
아이들도 깨끗한 아이를 좋아한다. 그러니 부모들은 아이가 친구들과 놀 때 용모를 단정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맞벌이 엄마 ○ 씨는 얼마 전 아이가 옷에 구멍이 났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 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깔끔하게 옷을 입히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혹시나 해서 하루 한 번 목욕도 빼먹지 않는다.
아이가 비만이거나 몸에 냄새가 나면 아이에 대해 꼭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심하면 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 혹시나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워할 수도 있지만, 밖에서 부딪히는 것보다 가정에서 먼저 해결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좋다.
사회성을 빙자한 반사회적 해법이다. 사회성이라는 것은 ‘남들과 잘 노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누구의 옷에 구멍이 났다고 놀리는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다. 비만은 말 그대로 (이것도 과하게 말해서) ‘개인의 질병’이지 타인에게 놀림이 될 소재가 아니다. 병원은 ‘뚱뚱하고 냄새나는’ 친구를 따돌리는 아이가 가야 한다.
하지만 ‘옷의 구멍’에서 원인을 찾는 엄마가 모범 사례다. 일순간에 사회성이 부족한 이의 가해성은 사라지고 평범한 아이는 앞으로 자신의 옷에 구멍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살이 쪄서 놀림을 당하는 아이는 ‘살을 빼는’ 방법으로 반사회적 행동을 한 이들에게는 면죄부를 줄 것이다. 그러니 육아서는 정말로 변해야 하는 사회성 결여의 인물을 방치하는 결과를 야기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닌 셈이다.
-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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