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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휴게소

서울 성곽 둘레길을 걷다 1

by 기름코 2013. 2. 20.

 2월 19일 화요일의 일기

 

만날 때마다 밥 먹고 차마시고 헤어지는 코스가 지겨워서 이번엔 특별하게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며칠 뒤면 중국으로 떠나는 수진이와 함께 성곽 둘레길을 걸었다. 총 4가지 코스 중에서 우리는 한 마음으로 북악산 코스를 선택했다.  투닥투닥 거릴 때도 있지만 우리 마음은 짝짝꿍 참 잘 맞는다. :)

 

한성대입구역에서 오전 9시 반에 만났다. 던킨도너츠에 들어가 커피와 베이글을 나누어 먹으며 수다수다. 그러다보니 본격적으로 둘레길 탐방에 나선 것은 오전 10시 10분.

보통은 창의문에서 시작해서 혜화에서 마치는데 우리는 반골답게 역행코스로 갔다. ㅋ

 

 

난 잘 모르겠는데, 수진이 말로는 옛 조선 성곽터 위에 집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고. 너무 대단하다면서 수진이가 dslr로 찰칵 찍어놨다.

 

역행코스 선택한 탓에 잠깐 헤맴. 구글지도 덕에 잘 찾아가고 있는 중.

왼편에 보이는 중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걸었다. 이 동네 살아서 좋겠다~~

 

8등신인 내가 자꾸 5등신으로 보이는 이유는 수진이 카메라가 광각이기 때문이야!!

 

 

서울과고를 지나서 와룡공원으로 진입. 이제 진짜 성곽 분위기가 물씬 난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공기는 차지만 햇살은 벌써 봄을 묻혀와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평일이라 사람도 없고 한산~ 교사의 특권인 겨울방학 만끽 중이다.

나는 앞으로 교직의 길을 걷지 않겠지만, 이 꿀같은 방학만은 그리울 듯.

 

 

 

 

 

 

 

참으로 여성스럽게 올라가고 있구나.

 

 

 

아직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길. 조심조심 걷느라 힘들었다.

 

참고로,  

북악산 코스는 말바위 안내소에 들러 신분증을 내고 출입증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모자 쓴 수진이 진짜 귀엽지 않은가? 3년이나 중국 가 있으니 얼굴 잘 봐두셈.

 

 

 

자꾸만 침범하는 수진의 거대 손가락. 이따가 또 계속 나온다. 기대하시라.  

 

 

조선 각 시기마다 성벽 축조 양식이 다르다.

 

지금 이것은 어느 시기일까. 아마도 세종 때인 듯.

 

 

성벽을 보니 당시에 노역 끌려와 고생했던 개똥이 아버지 아내의 마음에 빙의됨.

아이고 개똥이 아부지~ 하며 울고있는 거임.

나는 역사 공부를 했다면 민중사 했을 듯. 평민, 노비 마음에 늘 빙의된다. 한이 많아.ㅋㅋ

 

 

걸어올라갈수록 점점 더 확 트이는 경관

조선시대에는 사대문부심으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것인데 지금은 아니라는 게 아이러니. 예전에 압구정 등의 강남은 별 것 없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부동산은 아무도 모르는겨~~ ㅋㅋㅋ

 

 

 

몇 천 년 묵은 돌님에게 폭 안긴 우리들. 돌들에 비하면 우리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님.

돌에 몸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렸다.  

 

 

손가락이 주인공이야. 나는 부록. 다른 말로 덤이라고 하지.  

수진이 손가락 예쁘다아~~

 

 

말바위 안내소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호연지기가 절로 길러진다는 장점이 있다. 답답한 가슴이 확 트인다.  

철망 쳐진 성벽을 보면  이 나라가 분단국임을 새삼 재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곳곳에서 보초서고 있는 육군들이 훈훈해서 좋았다. 아휴 멋진 젊은이들!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발급받았다. 안내소 앞에는 이런 사슴모형이 있다.

사슴과 눈을 나란히 한 곳에는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안내소에서부터 계속 걸어나가면 숙정문이 나온다.

숙정문 다음부터는 군사적 문제로 사진 촬영 금지.

사진 촬영 금지된 곳들의 풍경이 끝내주게 아름다웠는데 아쉽다.

 

숙정문 위에 올라가서 찰칵!

 

 

 

숙정문에서 나와 계속 걸어가자 새로운 성벽 양식이 나타났다. 이것은 숙종 때인 듯.

 

 

드디어 백악산 표석이 나타남!!

 

 

백악산 정상부에 서면 서울시내 동서남북 주요 명소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산이 보이는 건 당연지사지만 광화문 이순신까지 보여서 놀람.

 

 

북악산 정상 다음부터는 쭉 내리막길이다. 어렵지 않다.

 

 

 

북악산 코스의 마지막인 창의문이다.

 

수진이가 창의적인 포즈를 요구해서, 가장 자신있는 더러운 포즈를 취했다.

효진이에 대한 오마주다. 받아다오.

 

 

창의문에서 나오면 서울의 또다른 얼굴이 펼쳐진다.

낮은 건물과 작고 한산한 도로. 강북만의 풍경. 나는 강남보다 강북이 백배 좋다.

 

언젠가 한번쯤 꼭 가보고 싶은 바와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가게들이 전반적으로 잉여잉여다. 겨울이라고 자기도 방학이라며 문 닫은 곳도 있음.

이 지역은 경제적 이윤을 우선해야 할 것 같은 가게마저 마인드가 여유롭다.

 

 

버스 정류장 바로 근처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종로에 윤동주하면 쌩뚱맞아 보이겠지만

시인 윤동주는 자주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었다고 하니 나름 개연성이 있다.

윤동주 문학관은 지인들에게 백번 추천해주고 싶다.

윤동주 시인의 친필로 쓴 시를 감상할 수 있으며, 시에 나오는 우물이 저절로 연상되는 아름다운 건축물 속에서 시인의 시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다. 후쿠오카 형무소의 이미지와 겹치는 콘크리트 방에 들어가 시인의 영상을 볼 때는 계속 눈물이 흘러나와 주체가 안 됐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터지기 시작.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어머니 하는 구절에서는 눈물이 홍수를 이룸.

10대 시절엔 윤동주 개인의 성품에 10대 특유의 자의식이 겹쳐 그의 시를 즐겼다면, 지금은 그냥 막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껴져서 이제는 식상할 정도로 익숙한 그의 시가 가슴을 때렸다. 너무 쉬운 우리말과 표현으로 어떻게 그런 시를 쓸 수 있었는지.

하나도 현학적이지 않고 겉 멋도 없다. 이게 윤동주의 시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 구절은 2013년 나의 모토다.

올해는 그 어떠한 허무에도 빠지지 않고, 나 역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

젊음, 유한한 인생, 성애, 순간뿐일지라도 그 하나하나의 열정들.

죽어가는 찰나의 것들에 냉소보다는 애정을 보내면서 나의 삶을 그러모아야지.

나는 보잘 것 없는 유한한 생명일지라도 유구한 대자연인 저 별 하나에 나의 소중한 것들을 투영하며, 끝없이 긍정하고 고개를 들어야지. 하늘 밑에서 인간의 숙명을 다하며 그렇게 정직하게 살아내야지.

 

관중과 포숙처럼 윤동주 시인에게는 정지용이 있었다.

나도 나이를 초월하여 그런 벗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란 그런 것이다. 남들 눈에는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도 나의 눈에는 범상치 않은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재능과 좋은 성품이 보이는 것, 그래서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것.

 

 

지난 여름 휴가 때 방문한 김유정 문학관에서도 눈물을 흘렸는데,

나는 우리나라 근대화 초기 문인들과 정신적 파장이 맞나 보다.

 

 

 

윤동주 문학관 방문을 마치고 인사동으로 가는 1020번 버스를 탔다.

다리가 약한 내가 낼롬 앉고 착한 수진이는 서서 갔다. 심지어 같이 셀카도 찍어주었어. 

 

장소감각 없는 나의 잘못으로 인사동이 아닌 경복궁에 내려버렸다.

슬렁슬렁 또 걸어서 인사동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 몇 끼 안 남은 수진의 식사권을 존중하여 한정식을 먹기로 했다. 

1인당 2만원짜리를 시켜보았는데 맛은 있었으나 가격에 못미치는 아쉬운 식사였음.

 

 

오후 3시쯤 모든 일정이 끝났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말 알차게 보냈다.

생산적 여가란 바로 이런 것인가!! 

주말마다 남편이랑 둘레길 산책을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게 만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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